8년 만에 136문중 조형물 들어서
숲속에 조각작품 경연장 방불
소문 퍼지며 참여 원하는 가문 늘어
내년 참가 가문은 추첨으로 선발
"사회분열 부르는 가문 과시 아닌 역사와 효 의미 되새기는 장소로"
한국인은 유교문화의 전통으로 조상에 대한 공경과 뿌리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명절 때면 웃어른들은 자손들에게 시조(始祖)와 자신의 가문(家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성(姓)씨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워 준다. 시조부터 가계를 정리한 족보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뿌리에 대한 관심의 반영이다.
대전 중구 침산동에 위치한 뿌리공원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씨의 유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성씨 테마공원’이다.
현재 통계상 우리나라 성씨는 286성에 4,176개 본관으로 알려져 있다. 김, 이 박 등 성씨는 삼국시대 일부 귀족 중심으로 사용되다 고려초부터 평민도 성과 본관을 쓰게 되었고, 성씨만으로 동족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면서 씨족의 고향을 일컫는 본관을 정해 동족을 구분하게 되었다는 게 뿌리공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뿌리공원을 가려면 대전 3대 하천의 하나인 유등천 상류 만성교(萬姓橋)를 지나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숲속에 다양한 모습의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12만5,000㎡의 터에 각 문중들이 자기 성씨의 유래와 번창을 기원하는 다양한 의미를 담은 조형물이 들어서 마치 조각작품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이곳에는 1997년부터 2차례에 걸쳐 136 문중이 성씨 상징 조형물을 설치했다. 내년 6월까지 90문중의 조형물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뿌리공원은 1995년 민선단체장이 들어선 후 자치단체마다 테마공원 조성 붐이 일었을 때 한 직원이 제안해 시작됐다. 당시에는 전국 문중을 대상으로 하기 보다는 우선 대전에 자리잡은 각 성씨 종친회를 설득해 조형물을 설치하기로 했다.
강현용 뿌리공원과장은 “처음에는 뿌리공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해 문중의 호응이 별로였다”며 “직원들이 종친회 사무실을 찾아 다니며 부탁을 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지조성비용을 구청에서 부담하고 성씨 조형물만 부담하도록 했다. 비용 부담과 문중내 의견 수렴 등으로 1차조성기에는 72개 문중만 참여했다. 당시에는 인구 규모가 비교적 적은 성씨들이 많이 참여했다.
그러나 뿌리공원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조형물 설치를 문의하는 문중들이 늘어났다. 강 과장은 “뿌리공원에 소풍을 온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성씨 조형물을 찾다가 없는 것을 보고 집에 돌아가‘왜 우리 성만 빠졌느냐’고 물어보자 부모들이 종친회에 조형물 설치를 건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2008년 2차로 조형물을 설치했는데 64문중이 참여했다. 안동권씨, 광산김씨 등 규모가 큰 문중들이 상당수 참여했는데 후발주자인 탓으로 1차 참여 문중들에 비해 조형물 설치 면적도 좁고 위치도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조형물은 문중 예술가들이나 종친회 의뢰를 받은 전문작가들이 제작했다. 대부분 돌로 제작했지만 돌과 청동을 함께 쓰거나(풍양 조씨), 금속(성주 도씨)을 사용한 사례도 있다. 조형물에는 성씨 유래를 기록하고 문중의 대표인물과 작품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남평 문씨의 경우 문중 대표 인물인 문익점의 목화와 물레 등을 상징화했고, 고령 신씨는 한글창제에 참여한 신숙주의 공을 기려 훈민정음 글귀 일부를 새겨 넣었다. 공자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곡부 공씨는 공(孔)자를 형상화해 작품을 만들었다.
성씨 상징보다 가문의 화합과 미래의 번영을 표현한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자손의 번영과 가족 화합을 기원하는 영일 정씨, 신천 강씨 등이 대표적이다.
조형물 사진을 찍던 안근호(80)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성씨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도 모르고 길에서 같은 성씨를 만나도 어떤 관계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자식과 손자들에게 조형물을 보여주며 조상을 설명을 해주려고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중구청은 내년 6월까지 90기의 조형물을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지난해 5월 전국 문중을 대상으로 접수를 받았는데 108개 문중이 신청을 해, 추첨을 통해 90개 문중을 선정했다. 나머지 18개 문중은 후일을 기약해야 한다.
중구청은 뿌리공원을 성씨 문화의 본산으로 조성하기 위해 2010년 족보박물관도 세웠다. 3층으로 지어진 족보박물관에는 족보의 체제와 구성방법 등을 설명해주고 족보 간행과정도 알려준다. 또 광개토대왕비가 우리라나 최초의 가계전승 기록이라는 사실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시기별 족보의 모습도 보여준다.
족보박물관 심민호 학예사는 “족보는 성씨별로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집안의 역사책과 같다”며 “문중과시를 통해 사회분열을 야기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켜 화합과 공존이라는 족보 본연의 정신을 살리는데 전시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청은 성씨 테마공원의 의미를 살려 매년 10월 ‘효(孝)문화 뿌리축제’도 개최하고 있다. 지난 9~11일 개최한 효문화 뿌리축제에는 전국에서 200여개 문중이 참여하여 조상에 대한 공경과 효의 의미를 되새겼다. 6,000여명의 어르신들이 성씨 깃발과 자기 문중을 상징하는 특색 있는 복장을 갖추고 입장하는 ‘문중퍼레이드’는 행사의 백미로 꼽힌다. 무장의 후손들은 갑옷을 입고 문관의 후손들은 갓과 도포, 사모관대 등을 착용한다. 축제는 점점 잊혀져 가는 효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문중과 어르신(과거), 청ㆍ장년층(현재), 어린이(미래) 등 3대 가족의 조화라는 틀속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중구청 관계자는 설명했다.
뿌리공원은 내년 국책사업으로 인근에 효문화진흥원이 들어서면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효 인프라를 갖춘 인성교육의 장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용갑 중구청장은 “아직도 여러 문중에서 조형물 설치 신청을 하고 있지만 부지확보가 관건”이라며 “앞으로 뿌리공원을 조상에 대한 공경과 진정한 효의 의미를 되새기는 교육, 문화 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허택회기자 th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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