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지요. 그런데 그 행복의 근원은 바로 지역 사회입니다.”
앤디 에반스(47) 퀸즈파크레인저스(이하 QPR) 재단 대표이사는 자신의 양복에 그려진 QPR의 휘장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웨스트 런던 출신인 에반스 이사는 4세부터 잉글랜드 프로축구단 QPR의 팬이자 주니어 선수였고, 현재는 QPR의 사회공헌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재단의 CEO입니다. 그가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행복의 근원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때‘박지성 클럽’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된 QPR은 현재 윤석영(25)이 활약하는 팀이기도 합니다. QPR의 구단주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토니 페르난데스로 항공사 에어 아시아의 CEO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아시아 대표 리그 중 하나인 국내프로축구 K리그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데 QPR은 그들의 파트너로 K리그 챌린지(2부리그)의 FC 안양을 선택했습니다. 아직 두 돌밖에 되지 않은 2부 리그 팀입니다. 에반스 이사는 “우리는 역사가 100년이 넘는 구단이다. 그럼에도 신생팀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을 찾은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FC 안양은 현재 FC 서울의 전신인 안양 LG 치타스의 명맥을 잇기 위해 안양을 연고로 창단된 시민구단입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100년 구단’을 모토로 지역사회와 꾸준한 스킨십을 해왔고, 지난해에는 K리그 대상 사랑나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첫 발을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팀의‘실험’에서부터 QPR은 또 다른 답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사실 QPR을 비롯한 잉글랜드 구단들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지만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94년에 설립된 QPR 재단의 창립 멤버인 에반스 이사는 “1980~90년대 잉글랜드 프로축구는 폭동의 시대였다. 많은 훌리건들이 폭력, 사망 사건에 연루됐고 구단이 나서서 이를 치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단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별개의 재단을 설립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연고지에 대한 투자는 관중, 중계료 수입으로 이어졌고, 다시 구단이 지역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졌습니다. 연고지 팬들이 구단을 응원하는 조건에는 성적뿐만 아니라 지역발전에 대한 기여도가 추가된 것입니다.
실제로 QPR 재단은 축구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활동들을 합니다. 특히 아스널, 첼시 등 같은 런던 연고의 명문 구단들과 경쟁하기 위해 ‘축구적이지 않은 것들’로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모읍니다. 살사, 에어로빅, 줌바 댄스 강좌로 50세 이상의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축구장을 찾도록 하고, 저소득층 가정의 청소년들을 위한 비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등이 비결입니다. 에반스 이사는 “금요일 오후에 지역의 젊은 층이 우리 홈구장에서 축구, 배구, 크리켓, 심지어 디제잉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며 “이로 인해 우범 지역이었던 경기장 주변에서 사소한 난동이나 경범죄가 줄어들었다는 경찰의 통계도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100년을 내다보는 FC 안양과 100년을 걸어온 QPR은 24일까지 더 새롭고 효율적인 사회공헌활동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댑니다. 이들이 과연 어떤 공감대를 만들고 기발한 발상을 떠올릴지 기대가 됩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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