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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웰컴페이지를 없애자

입력
2015.10.2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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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는 이라면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 지뢰밭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온갖 문제점이 지적되었지만 여전히 자유로운 서핑을 방해하는 훼방꾼 노릇을 한다. 백기를 들고 이 둘을 컴퓨터에 설치하고 책이나 음원을 구입하려고 사이트에 접속하면 국내 사이트의 또 다른 면을 만나게 된다. 접속한 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리도록 만든 이른바 웰컴페이지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같은 인터넷 서점이나 멜론, 벅스 등의 음원 사이트 모두 동일하다. 본인이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와 무관하게 사이트 운영진이 새로운 신간과 음원, 베스트 위주로 구성해놓은 페이지를 거쳐야만 한다. 인터넷 서점의 경우 불과 몇 권의 책만 모두에게 노출되는 행운을 누리기에 그 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무척 치열하니 여러 편법이 끼어들기도 한다. 사이트 입장에서는 이 페이지는 아주 좋은 광고면이기도 하다. 개인별 맞춤 추천 코너가 있기는 하나 페이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낮다.

음원 사이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피씨든 모바일이든 싫던 좋던 실시간, 일간, 주간으로 세분화된 베스트 차트에서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음악을 일단 만나야 한다. 예외는 없다. 음원 사재기 유혹에 빠지는 것도 이 페이지 때문이다. 베스트 차트에 올리면 방문한 모든 이에게 음원을 노출할 홍보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음원 사이트의 추천곡도 마찬가지다. 자사가 제작하고 유통하는 음원을 사이트 상단에 노출시키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통신사가 음원 제작은 물론 유통까지도 장악하고 있는 독과점 구조는 제쳐두더라도, 끼워팔기나 사재기는 모든 사람이 같은 페이지를 보기 때문에 가능한 영업(?) 방법이다. 취향에 따라 다른 아티스트와 차트를 소개하는 구성에서는 저런 편법이 통할 수 없다. 아주 다양한 품목을 조금씩 팔아서 수익을 올리기보다는 베스트셀러 몇 종을 띄워서 이익을 내고자 하는 구도다. 베스트셀러 중심의 판매가 더 매출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아마존과 애플뮤직은 국내 사이트와 사뭇 다르다. 아마존은 아이피 주소를 기억해 이전에 구매하거나 찾아본 책과 유사한 책을 첫 페이지에 띄워준다. 새 컴퓨터이거나 이전 접속 정보가 삭제된 경우가 아니라면, 아마존의 웰컴페이지는 사람들마다 제각각이다. 아마존에서 옷만 산 사람이라면 아마존이 인터넷서점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을 정도다. 그 사이트에서 책 표지라곤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애플 뮤직은 더 극적이다. 계정을 만들 때 선택하게 되어 있는 선호 장르를 중심으로 끝없는 추천곡 리스트를 제안한다. 해당 장르의 대표적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데에서 나아가, 특정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받은 곡, 시대별, 연도별 장르 대표곡 등을 묶어서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 유행하는 음악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더 많이 듣게 하는 빼어난 장치다.

이제 한국 사회에는 국민 가수, 국민 작가, 국민 배우가 없어도 된다. 100만부 베스트셀러나 1000만명이 보는 영화는 획일화의 징후일 뿐이다. 문화를 살찌우는 건 100만부가 나간 한 권의 책보다 1만부짜리 책 100권, 2,000부짜리 500권이다. 모두가 똑같은 신간 정보와 베스트 음원으로 구성된 페이지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한국 문화의 종 다양성을 늘리는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대형 출판사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의 책을 펴내면서 도서정가제를 어겨가며 냄비를 끼워 파는 부끄러운 모습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아이돌의 신곡뿐 아니라 이 신곡과 종횡으로 얽힌 다른 음악을 함께 만나게 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같은 물건을 구입했다는 소속감이 아니다. 더 다양한 개성, 더 다양한 정체성, 더 다양한 취향, 더 다양한 음악, 더 다양한 책, 그리고 더 다양한 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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