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수연 "강한 여자? 겁 많고 눈물도 많다"

입력
2015.10.21 20:00
0 0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기자회견 중에 내 성질대로 화내며 답했다가 스태프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며 웃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기자회견 중에 내 성질대로 화내며 답했다가 스태프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며 웃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우려가 있었다. 의문도 적지 않았다. 아무리 영화계 생활 40년이 넘었다고 해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라는 호칭이 낯설었다. ‘월드 스타’라는 수식까지 따라 붙던 유명 배우이기에 혹자는 얼굴마담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보냈다. 그러나 제20회 부산영화제가 지난 10일 막을 내린 뒤 배우 강수연(49)은 해외 스타가 참석한 기자회견 등을 차분하게 진행하며 집행위원장으로서 신고식을 무난히 치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동시에 부산영화제 위기론도 잠잠해졌다.

21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에서 만난 강수연은 “아직도 영화제가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여전히 정신이 없고 매우 바쁘다”고 덧붙였다. “어젯밤에야 부산에서 돌아왔다”는 그는 이날 일본 도쿄국제영화제 참석을 위해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11월 중순까지 프랑스 파리 등을 돌아봐야 한다”며 커다란 짐 가방과 함께 기자를 맞았다.

-집행위원장으로 영화제를 처음 치러본 소감은?

“아직도 내가 리더십이 있는지 의문이다. 내부 행정이나 살림 등은 아직 모르는 게 많다. 결정권을 지닌 자리이니 힘들고도 조심스럽다. 아직도 긴장되고 걱정된다. 프로그램이 확실히 다양해졌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매우 기분이 좋다.”

-괜히 집행위원장 맡았다는 후회는 없나.

“내가 자처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일이 많고 힘이 들었다. 영화제 시작 전에만 영화 50편 정도 봤다. 폐막하고 나선 이틀 앓았다.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도 먹었다. ‘나 뭐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만 아픈 게 아니다. 영화제 사무국이 병실이다.”

-영화 ‘베테랑’으로 유행어가 된 ‘우리가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다’는 말을 처음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영화제 ‘가오’(위신)는 지킨 건가?

“그 얘기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제 좀 식상하지 않나(웃음)? 10년 전쯤 (영화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 만나 한 말인데 그걸 기억해서 영화에 사용했다. 재미 있으라고 농담처럼 한 말이다. 영화 속처럼 깊은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다. 다들 돈이 없으니 그런 말을 쓰게 되나 보다.”

-강단 있어 집행위원장 역할을 잘하리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런 이미지가 바로 ‘사기’다. 내가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대부분 강했다. 대중은 내가 여자 마징가제트라도 되는 줄 아는데 원래 성격은 겁이 많다. 어영부영하는 면도 있다. 눈물도 많다. 동물에 대한 방송프로그램을 보고 울고 뉴스를 보고도 운다. 남 앞에서는 잘 안 운다. 울면 상대에게 부담이 되고 미안한 일이 되니까. 그래서 (집 밖에서는) 카메라 앞에서만 운다.”

-3살 때 길거리 캐스팅돼 46년을 배우로 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내 의지대로 연기를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 뭘 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방송 영화 연극 다방면으로 활동하다 영화만 하기로 결심하고 고교2년부터 20년 가량 영화만 출연했다. ‘여인천하’(2001)가 방송 복귀작이다. 관객 입장에서 영화가 제일 좋았고 영화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지금도 영화를 즐겨 본다. 조조할인으로 혼자 가서 보는데 잠옷 바람에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모자를 쓰고 가곤 한다.”

-1987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여우주연상(‘씨받이’)을 받았다.

“최연소 수상자였다. 하지만 충무로에서 나는 신인배우가 아니었다. 당시 해외 나가면 ‘북한에서 왔나, 남한에서 왔나’를 먼저 물었다. ‘너 정도 여배우는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나’ 같은 질문도 받았다. 나나 영화에 대한 관심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던 시절이다.”

-집행위원장 하다 보면 배우로 활동하기 어려워질 듯하다.

“여전히 배우 생활이 더 중요하다. 내년 말까지는 시간이 없어 연기를 못하지만 내가 영화제에 익숙해지면 겸업도 가능할 듯하다. 배우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냐는 고민을 항상 한다. 시어머니든 시할머니든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며 나이가 들고 싶다. 내가 죽 해온 고민이다.”

-영화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지켜온 비결이 있나.

“그런 건 없다. 그저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다. 난 자아가 생기기도 전 연기를 했다. 다른 세계를 모른다. 어느 쪽에선 매우 성숙하나 다른 쪽에서는 유아적이다. 어렸을 땐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나 이제는 다른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영화라는 결론은 오래 전에 냈다.”

-‘월드스타’라는 호칭이 처음 붙은 국내 배우다.

“(베니스영화제 수상이) 당시엔 큰 사건이었으니까 국내 언론이 붙여준 호칭이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아무도 모르는데 무슨 ‘월드’인가. 그런 호칭이 엄청 부담스럽고 기대치가 버거웠다. 그래서 죽을 만큼 연기를 했다. 긍정적인 면은 식당 가면 서비스로 더 준다는 거(웃음)? 대우 받고 인정 받은 것은 좋았다.”

-어려서부터 연기를 해 유년시절을 빼앗겼다는 생각도 할 텐데.

“유년시절뿐 아니다. 청소년기도 뺏겼다. 초등학교 때는 일요일에 딱 두 번 놀았다. 학교수업을 빼먹을 수 없어 TV드라마 녹화가 일요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일요일 방송국녹화가 없어져 친구들이랑 명동에 놀러 갔다. 사람들이 몰려 나온 걸 보고 무서웠다. ‘왜 이리 사람이 많냐’고 친구에게 물으니 당연한 듯 ‘일요일이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유년기, 청소년기가 없어 무척 안타깝다. 그 나이 때 누렸어야 할 감성이 없다. 아직 그 감성을 채우고 싶어서인지 캐릭터 상품이나 문구류를 좋아한다. 쓸 일 없는데도 예쁜 필기구나 필통을 보면 사게 된다. 남들은 어렸을 적 배웠을 만한 걸 못한다. 연기 때문에 오토바이 타는 법은 배웠으나 자전거는 못 탄다.”

-그래도 아역부터 하이틴스타를 거쳐 성공적인 배우로 살아왔다.

“대중은 잘된 작품만 기억하니 내가 무난하게 산 걸로 생각한다. 수많은 실수를 하고 실패를 겪었다. 특히 하이틴스타에서 성인연기자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혹독하게 앓았다.”

-예전 작품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되도록 예전 출연작을 안 보려고 한다. 보면 속이 상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래도 내 눈엔 나쁜 것만 보인다.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의 대표작은 다음 작품’이라고 하는 여러 배우 감독들의 마음을 난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한 여성, 멋있는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내가 드레스 입고 레드카펫에 서있는 모습만 봐서 그렇다. 트레이닝복 입고 슬리퍼 신고 극장 가는 모습 보면 그런 생각 들지 않을 거다. 멋있기만 하고 완벽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유해린 인턴기자(이화여대 국문과 3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