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하는 나들이였다. 근 10년 만에 만나기로 한 동창들이다. 진짜 세상 둘도 없을 만큼 친하게 지냈다.
‘치, 이것들 나보다 키도 작고 못 생겼었는데 - 하긴, 능력 안 돼서 혼자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이쁠 때 후다닥 남자 잡아 결혼 한 거지 뭐 - 이건 취집이라고 봐야지! 흥 난 결혼에 목숨 안 걸어. 이 지지배들아.’
청첩장 받을 때마다 비 맞은 중마냥 궁시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술 먹고, 밤새 토하고, 아침 수업 빼먹고 몰려다니다가 다시 술 먹고. “야, 우리 이러다가 졸업하기도 전에 ‘처음먹는이슬회사’에 스카우트 되는 거 아니냐”며 되도 않는 걱정에 다시 한번 술잔을 꺾던 우리. 공부랑은 담 쌓고 살았던 우리. 중앙도서관은 일년에 한두 번 갔을까,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어머 여기 이렇게 큰 나무가 있었어?’ 했던, 하지만 학교 구석구석 크고 작은 술집의 여는 날 쉬는 날, 외상이 허용되는 금액까지 빠삭하게 알던 우리. 그러면서도 시험이 끝나면 날 때부터 모범생이었던 것마냥 열심히 공부했으니 오늘만큼은 놀자며 - 놀 건 수를 찾아 다녔던 우리.
어울리는 4인방 중에 누군가가 연애라도 할라치면 “야, 그 오빠 그 과에서 안 사귄 여자애가 없대. 완전 카사노바래” 없는 얘기 지어내며 끝까지 그녀를 보내주지 않으려 했고, 사귀기라도 하면 “걔 요즘 남자생기더니 우리랑은 아는 척도 안 하지?” 대역죄인을 만들었다가, 가끔씩은 환기 차원으로 “야, 니 남자친구 학생회관에서 딴 녀어… 학생이랑 밥 먹더라?” ‘사랑과 전쟁’의 주인공도 시켜봤다가 - 질투도 뒷담화도, 은근슬쩍 이간질도 시켰다가 덜컥 헤어지기라도 하면 그간 나도 한몫 한 것 같아서 “야, 거봐 내가 뭐랬어. 그 오빠 바람둥이라니까!! 잘 헤어졌어. 딴 놈 만나자!! 응?” 온 힘을 다해 함께 욕을 해주곤 했던 우리. 그러다 사는 게 바빠서 연락이 뜸하다가 청첩장이 이렇게 날아오면 나머지 셋이 만나서는 “그 동안 연락 한번 없다가 시집간다고 연락하네.” “그 집 시어머니가 어떻네,”- 한바탕 험담 타임을 하고 못다 나눈 수다는 “드레스가 안 이뻤네.” “신랑이 생각보다 키가 작네.” 결혼식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는 나 빼고 다들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고 - 한 가정을 지혜롭게 꾸려가는 안사람이 되었으니 나보다는 다들 어른들이다. 그래도 일하는 골드미스이니 최대한 젊고 어려 보이게 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렇게 미워하다 싫어하다 온갖 정이 들었던 그들과 헤어질 시간이 또 왔다. 웃고 떠들고 저녁식사 후 계산을 하려는데 야 - 내 인생과 함께 살아와준 니들에게 이 정도는 내어줄 수 있어 “내가 낼게” 말하던 나의 한마디에 -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여 흔들리는 눈동자들을, 솟아오르는 눈물들을 그미들이 내게 들켰다. 남편 저녁을 차려주려면 장에 들렀다 가야 한다며 일찍 나서는데 친구들이 한마디씩 한다. - 오늘 진짜 즐거웠어, 완전 최고였다 야.
나 몇 년 만에 이렇게 웃고 떠드나 몰라. 처녀적으로 돌아간 것 같더라. 애들 학교 보낼 때까지는 계속 전쟁이라는데 그때는 우리가 좀 편해지겠지? 또 보자 야.
아. 애들은 어디 홍보관이라도 가서 상품으로 받았는지 하나같이 큼지막한 가방들을 둘러맸다. 애기들 기저귀에 이유식 - 소독한 젖병, 가짜 젖꼭지 그리고 물티슈에 깨끗한 손수건들. 그 가방에 지들 건 하나도 안 들었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친구들 눈가에 기미가 그제서야 하나둘씩 보인다.
안겨있던 친구들의 어여쁜 아가들도.
‘이모 뱌뱌~’ 한다. 어떤 책에서 그랬다.
‘아이들이 한 번 웃을 때마다 산속에 꽃봉오리 하나 터진다’고. 조그만 저 귀여운 천사들 좀 보게. 저 천사를, 내 친구가 낳았단 말이지. 그래. 자주 보자 우리. 천사를 낳은 너희들이 사실 많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기실 천사를 뒤에 업고 있는 그대들이 참으로 부러운 날이었다.
남정미 웃기는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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