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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상봉 이후

입력
2015.10.2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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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1974년 1월 창간 20주년 특집으로 ‘1천만 이산가족 친지를 서로 찾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8면짜리 신문에 한 페이지 가득 사연이 보도됐고, 18일자에 실렸던 ‘31세 윤숙자씨’는 24일 아버지와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1면 톱 제목은 ‘1천만의 첫 번째를 찾았다’였고, 아버지의 일성은 “이제 죽어도 한(恨)이 없구나”였다. 6.25전쟁 직후 창간된 한국일보는 앞서 1961년부터 ‘10만 (전쟁고아)어린이 부모 찾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모두 한국 언론사 최초의 일이다.

▦ 한국일보는 1천만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으로 1976년 7월까지 모두 162회 부모ㆍ형제ㆍ친지를 만나는 행사를 이뤘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1983년 여름,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시작됐다. TV매체 최대의 대중참여를 기록했고, 전쟁의 아픔과 상흔을 생생하고 처절하게 표현한 프로그램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다리고 있다. 그 해 한국일보에 입사, 여의도 땡볕을 누비며 ‘눈물과 한의 현장’을 쫓아다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 1983년 연말, 한국일보는 한 해의 뉴스를 돌아보는 시리즈를 실었다. ‘KBS로 상봉한 이산가족의 현재’를 취재했다. 한 형제의 사연을 기억한다. 당시 50대였던 형 A씨는 서울 변두리에서 조그만 목재소를 꾸리고 있었고, 30년 만에 만난 동생 B씨는 서울 중심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형제가 연락을 하며 지냈던 것은 처음 한 달 남짓이라고 했다. A씨는 말했다. “요즘은 서로 잊고 살아요. 만난 게 후회된다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평생 간직했던, 저의 인생을 지탱했던 그 동생이 사라졌거든요.”

▦ 오랜만에 성사된 남북 이산가족 2박3일간의 상봉이 오늘 끝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갈라져 각자의 위치로 돌아간다. 내 고향이 남쪽 끝 섬마을이어서 그렇겠지만, 남북 이산가족의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감히 1%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상봉 이후’는 새로운 현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리움의 여생’이 새로운 ‘한의 여생’으로 바뀌어 남아선 안 된다. 서울에 함께 있든, 남북으로 갈라서 있든, ‘상봉 이후’를 잘 관리해야 한다. 개인의 몫이기도 하고 국가의 책임이기도 하다.

정병진논설고문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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