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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하던 군사대국 중국 세계향해 기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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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하던 군사대국 중국 세계향해 기지개

입력
2015.10.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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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남수단에 파병된 중국군이 지난 5월 자국군 캠프에서 군장비를 점검하는 사열을 하고 있다. 남수단 =신화 연합뉴스
유엔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남수단에 파병된 중국군이 지난 5월 자국군 캠프에서 군장비를 점검하는 사열을 하고 있다. 남수단 =신화 연합뉴스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파병을 원한다면, 우리는 중국 평화유지군을 환영할 것이다”

심각한 내전에 휩싸인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지난 4일 중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평화유지군 주둔을 희망했다.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도 “중국 평화유지군은 우크라이나를 안심시킬 수 있다”며 “중국과 관계가 좋은 러시아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우크라이나 파병이 성사되면, 중국군이 사상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하는 셈이 된다. 중국 언론들도 “우크라이나 사태에는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유럽 국가들도 깊이 개입해 있는 상황”이라며 “유엔이 이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보낸다면 ‘중국 평화유지군’이 가장 이상적이고 적절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러시아 등 우크라이나 이해 당사자들이 이에 동의할 지 ▦중국이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는지 등의 단계가 남아있다.

중국이 왜 이 시기에 국제 분쟁 지역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적극적으로 파병하고 나서는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과 유엔의 가깝고도 먼 역사

중국의 평화유지군 참여 검토는 유엔과 중국의 관계에서 ‘격세지감’이라는 평가다. 그만큼 중국과 유엔은 애증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1945년 유엔 창설 당시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있던 장제스(蔣介石)의 중화민국(현 대만) 정부는 유엔 헌장에 첫 서명한 51개국 중 하나로 유엔 창립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49년 장제스 정부가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 군대에 패해 대만으로 패주하면서 유엔과 중국의 관계는 불편해 졌다.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현 중국)’은 유엔에서 “우리가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주장했지만, 소련 등 공산권 국가를 견제하려는 미국은 ‘중화민국’을 계속 지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꼬였다. 유엔안보리는 북한의 남침을 인정하고 미국 주도의 21개국 연합군을 한반도에 파견했다. 하지만 중국은 수세에 몰린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병, 한반도 곳곳에서 유엔연합군과 전쟁을 벌였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중국은 유엔을 상대로 ‘합법적 권리 회복’을 주장했다. 결국 1971년 10월25일 중국은 21차례의 시도 끝에 아프리카 26개 신생 독립국 등의 지지를 기반으로 유엔 총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승계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이어 대만을 쫓아내고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이 됐다.

이에 대만은 강력 반발, 유엔에서 자진 탈퇴했다. 이후 대만은 탈퇴 20주년인 1991년 유엔에 독자적인 가입 신청을 했지만 중국의 반대로 총회 안건에도 오르지 못한 채 무산됐다.

이후 중국은 유엔의 활동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하거나 어깃장을 놓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든 아니든, 다른 나라의 주권 문제에 간섭하는 일은 되도록 멀리 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불편한 관계만 유지한 것은 아니다. 중국 지도자들은 유엔을 국제무대 데뷔의 장으로 삼았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2000년에,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은 2009년에 유엔총회에 등장해 자신의 존재감을 세계에 알렸다.

중국의 전향적 태도, 왜?

중국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1990년부터 최근까지 25년간 연인원 3만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했으며 10명이 활동 중 사망했다.

1990년4월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5명의 군사옵서버를 보낸 게 첫 활동이었다. 이후 1992년 캄보디아에 공정부대를 파견했고 2013년에는 아프리카 서북부 말리에 처음으로 전투병을 보냈다. 공병, 의무, 경비 부대가 주를 이룬 300~400명 수준이었다. 올해 1월에는 내전 상태인 남수단에 보병 700명을 파견했다. 전 세계 유엔 파견지역 16곳 중 중국이 파병을 한 곳은 9곳이나 된다. 현재 3.084명의 군인과 군사옵서버 등이 평화유지군으로 활동 중이다. 이 과정에서 파병국에 1만1,000㎞의 도로와 300여개의 다리를 건설했고 9,400개의 지뢰ㆍ폭발물을 제거했다. 의료 활동으로는 환자 14만9,000명을 치료했고 구호물자 110만톤을 지원했다.

중국의 파병 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을 태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8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8,000명 규모의 평화유지군 추가 계획을 밝히며 “중국은 향후 새로운 유엔 평화유지군 메커니즘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평화 발전을 위한 유엔군 활동에 향후 10년간 10억달러를 제공하는가 하면, 아프리카 평화 정착을 위해 1억달러 규모의 군사자금을 추가 지원할 예정이다. 시 주석의 계획대로 기존 3,000명의 평화유지군에 8,000명이 추가 편성되면 중국은 세계 최대 평화유지군 파병국이 된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최근에는 난민문제로 곤경에 처한 중동 국가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총 1억위안(약 178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 국가는 최대 난민 발생국인 시리아와 인접국가인 요르단, 레바논 등이다. 중국은 그간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 국제 사회가 군사적으로 개입하는데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

중국이 이처럼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국제 질서에 무턱대고 반대하거나 어깃장을 놓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세계 질서를 새로 정립하겠다”는 외교원칙의 변화라고 주간 뉴스위트는 분석했다. 평화유지군 파병 및 인도주의적 개입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중국의 복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 주석이 줄곧 강조해 온 “국제 질서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與時俱進)”는 ‘신형(新型) 국제관계론’과 일맥 상통한다.

시 주석은 “앞으로는 국제 사회에서 힘 세고 부유한 국가, 혹은 가난하고 약하기만 한 국가는 있을 수 없다”며 “힘을 사용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가진 국가는 단지 자신의 발등을 찍을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사실상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 위주로 편성된 기존 국제 질서와 가치관에 반기를 드는 발언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국이 미국 주도의 현 체제를 당장 뒤집어엎겠다는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중국 컨설팅업체 차이나폴리시의 벤자민 허스코비치 연구원은 “중국은 미국이 더 이상 인권과 사이버 보안 문제, 영통 분쟁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훈계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단지 중국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소신 있게 추진하고 있는 인정해 줄 세계 질서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의 반응 “일단 환영은 하지만…”

대부분의 국제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런 전향적인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가레스 에반스 전 호주외무장관은 “세계 강대국 중 하나인 중국의 이런 태도는 세계 평화 유지에 매우 도움이 된다”라고 긍정 평가했다.

회의론자들은 그러나 “중국이 국제 평화와 합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이웃 국가들과의 분쟁에는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남중국해 등에서 주변국들과 끊임없이 갈등 중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역 두 곳에 높이 50m 규모의 등대를 설치해, 필리핀이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려는 현상 변경 행위”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공공ㆍ민간 시설을 추가 건설한다는 방침이어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또 올 7월과 9월에는 중국 선박이 베트남 어선을 잇따라 공격해 침몰시키기도 했다. 미국과는 남중국해 통행권 문제로 충돌하고 있어 이 지역 긴장이 한층 고조되는 상태다. 이 밖에도 일본과 브루나이, 대만 등과도 첨예한 대립 관계에 있다.

중국의 이런 행태에 주목하는 분석가들은 중국이 과연 ‘순수한’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중국이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2011년 독립한 신생국 남수단이 좋은 표본이다. 수단은 아프리카 5위의 원유 매장국이며 이 가운데 75%가 남수단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중국의 선제적인 파병은 ‘검은 황금’을 의식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다.

중국 국영석유회사는 남수단의 광대한 유전을 운영하는 합작회사 지분을 40%나 보유하고 있으며, 홍해의 항구도시 포트수단까지 1,600㎞에 이르는 송유관을 운영하고 있다. “아프리카 자원확보와 영향력 확대를 위해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나올만한 대목이다. 시 주석 역시 “중국은 개발도상국,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을 확고하게 지원할 것이다”라며 아프리카에 집중 관심을 쏟고 있다. 한 전문가는 “어느 정도의 자국 이기심은 유엔평화군 파병의 기본 동기가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중국이 그간의 ‘오해’에서 벗어나 국제 사회의 박수를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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