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워싱턴에서 가진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국내 반응이 엇갈린다. 정부·여당은 정상회담이 한미동맹관계의 공고함을 확인하고 양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야당은 정상회담이 “정부의 자화자찬과 달리 전혀 새로운 내용도 성과도 없었다”고 논평하는가 하면 일부 시민단체는 정상회담이 “평화파괴·굴욕회담”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근래 들어 한미 간에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들이 적지 않았는데 대부분 한국의 이익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미국 항공기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의 핵심기술 이전을 미국 정부가 거부하였다. 미국은 주한미군 기지에 불법 반입한 탄저균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상과 재발 방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이 가입 의향을 갖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한국의 관심을 환영한다”며 기대 이하의 반응을 했다. 대신 오바마는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갈등할 경우 미국 편에 서라는 요구를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한국의 경제적 의존과 군사적 의존 대상이 중국과 미국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의 발언은 한국에 선택을 재촉하는 미국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금번 한미정상회담은 워싱턴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의식해 ‘빈틈 없는’ 동맹관계를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는 “한국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재균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면서 한국을 힘껏 끌어당겼다. 한국이 소위 ‘연루의 동맹 딜레마’에 빠져들 가능성을 보인 대목이다. 세계 패권국가와 맺은 비대칭적 동맹관계에 안보를 의탁하면서 동맹의 이름으로 포장된 패권국의 요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려움을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연루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우선, 연루의 딜레마에 벗어날 필요성을 인식하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 최고지도자가, 정치권이, 나아가 국민들이 비대칭적이고 경우에 따라 종속적인 한미관계의 관성에서 깨어나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오는 노력을 포기하고,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가능성을 열어놓고, 북핵문제를 압박 일변도로 접근하고, 인권침해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한미군을 방치하는 한에 있어서는 동반자 관계에 바탕을 둔 동맹은커녕 국가주권을 유지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는 한미관계는 ‘엄청 맑음’, 남북관계는 ‘짙은 안개’로 요약할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고 있지만, 남북관계가 좋아질지는 요즘 날씨처럼 오리무중이다. 금번 한미정상회담의 ‘성과’가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간 일치된 목소리를 낸 것이라면, 그 목소리는 지속적인 압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평화협정 제안을 일축하며 대화의 문을 닫고 핵과 인권 문제를 소재로 압박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남북한 당국이 일회성 이산가족 상봉에 그치지 않고 상봉의 정례화, 금강산 관광 재개, 당국간 대화 복원 등 남북관계 발전을 향해 대화의 장에 나올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 입장에서 남북관계는 통일·외교·안보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정책 공간이자 채널이다. 남북관계는 인도주의와 통일의 문이고, 신성장동력이자 동북아 평화의 발판이기도 하다. 동맹의 연루 딜레마를 벗어날 안보 보완재이기도 하다. 내달 초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은 아직 지역안보협력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과 달리 다자안보협력이 제도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경제협력이 안보 딜레마를 상쇄하기 못하는 동북아의 현실 속에서 남북관계는 한겨레의 미래만이 아니라 동북아 안보번영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국은 남북관계와 한미 동맹관계를 병행 발전시킬 수 있음을 2000년대 초에 보여주었다. 지금은 둘이 제로섬 게임의 양상을 띠고 있다. 한미정상회담과 이산가족상봉의 동시 진행이 이런 구도를 전환시킬 계기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리한 기대일까.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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