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 5년차 발레리나 강미선의 눈에 러시아에서 온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는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었다. 발레를 배울 때부터 “나중에 커서 유니버설발레단에 가겠다”는 열망으로 미국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강미선과 달리 콘스탄틴은 “한국에 유니버설발레단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던” 남자였고, 군무를 담당해 제대로 말 한번 섞어 본 적 없는 후배였다. 그랬던 그가 주역 언더스터디(메인 배우가 공연에 설 수 없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로 지명되자 제 역할은 팽개치고 주인공 춤 연습부터 했다. 두 사람은 2006년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연습하다 싸움까지 났다.
“그때 저랑 ‘파랑새 2인무’를 춰야 했는데, 이 연습은 안하고 주인공 연습만 엄청 하더라고요. 주역 연습을 해도 본래 자기 역할은 완벽하게 해놓고 남는 시간에 해야 할 텐데 싶어 잔소리 많이 했죠.”
15일 강동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습장에서 강미선이 그 시절 얘기를 꺼내자 한국말이 서툰 콘스탄틴 얼굴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변한다. “미선, 그거 말고도 할 얘기 많잖아.” 두 사람의 관계는 2년이 지난 2008년 연말, ‘호두까기 인형’ 주역을 맡으며 크게 바뀌었다. “정말 하고 싶던 작품에 주인공으로 서게 됐는데 제 실수가 너무 잦은 거예요. 맘고생이 심할 때 먼저 이 작품의 남자 주역을 했던 콘스탄틴이 ‘괜찮다’ ‘잘 하고 있다’며 응원해줬는데, 위안이 되더라고요.”(강미선)
“너무 잘해줘서” 갖게 된 호감이 사랑으로 바뀌었고, 두 사람은 발레단 공식 커플이 됐다. “발레밖에 모르던 남자라, 여자 무용수가 눈에 안 들어왔다”는 콘스탄틴 역시 이제는 “미선의 모든 게 좋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지난해 5월 백년가약을 맺은 두 사람은 발레 ‘라 바야데르’의 주인공으로 비극적인 사랑을 나눈다.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이 작품에서 인도무희 니키아, 전사 솔로르 역으로 29일 무대에 선다. 발레단 주역 무용수가 된 후 ‘호두까기 인형’ 외에 호흡을 맞춘 적이 별로 없는 두 사람에게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다.
무용수 150여명이 출연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발레인 이 작품은 무용수들에게는 감정처리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났다. 특히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다 배신당하는 인도 무희 니키아는 테크닉, 체력, 감정 표현을 다 갖춰야 하는 역이다. 강미선은 “사랑에 행복해하는 모습도 표현해야 하지만 배신을 당한 후에 처절하면서도 내면에 강한 카리스마를 유지하는 연기가 필요한 역할”이라며 “각기 다른 3막의 감정을 이어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어렵기는 콘스탄틴도 마찬가지다. 그는 “규모가 큰 작품이라 점프 같은 테크닉도 훨씬 크게 선보여야 하고 중간에 마임과 어색하지 않게 연결해야 한다. 지젤의 알브레히트를 연기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남자 무용수는 여자 무용수가 편안하게 춤추도록 들어올리고, 받쳐주는 게 중요한데, 이번에 미선이 파트너가 돼서 훨씬 편하게 제 춤에 몰입할 수 있어요. 불편하면 바로 연습 더 하자고 말하거든요.”(콘스탄틴)
강미선은 이번 공연에서 니키아에게서 솔로르를 뺏는 악녀, 감자티 역할에도 캐스팅됐다. 27일과 31일 황혜민 엄재용 커플의 공연에서다.
“무용수 부부로 사는 거요? 연습 끝나고 집에 가서도 춤 얘기, 작품 얘기 할 수 있어 좋아요. 너무 힘들어 지칠 때면 묵묵히 집안 일 하면서 응원해 주고요.(웃음)”
(070)7124-1737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