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0월 21일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ㆍ사진)’를 출간했다. 종군기자로 스페인 내전을 겪고 온 뒤 소명(召命)인 양 매달려 썼다는 작품. 41살의 그는 채 가시지 않았을 분노와 절망에 저항하듯 짧고 건조하게, 꽃 모가지 톡톡 분질러 자유와 민주주의와 사랑의 제단에 툭툭 던지듯, 이엄이엄 작품을 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프랑코 파시스트 반군에 맞선 국제여단의 미국인 폭파 전문가 로버트 조던. 그는 세고비아 탈환 작전을 앞두고 적의 보복 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교량 폭파 임무를 띠고 현지 게릴라 부대에 잠입한다. 소설은 그가 어렵사리 임무를 완수하고 숨을 거두는 나흘 동안의 이야기다. 동지의 갈등과 배신, 구원 같은 사랑, 희망과 절망….
‘누구를…’은 사실 전쟁 신파의 구도에 충실한 작품이다. 치명상을 입어 연인과 함께 현장을 벗어날 수 없게 된 조던이 도피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총을 들며 “이제 당신은 가야 해, 하지만 난 당신과 함께 가는 거야”어쩌고 하는 대목에서, 75년이 지난 지금, 닭똥같은 눈물을 흘려줄 독자는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파라고 한다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국제여단의 순정만 한 신파도 없을 것이다. 36년 총선에서 승리한 좌파 인민전선 공화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파시스트 군부와 왕당파, 가톨릭 지주계급의 내전에 유럽과 미국 등 국제 사회는 잇속을 챙기기 바빴다. 1차대전의 참화를 겪은 국제연맹은 불간섭 조약을 내세워 공식적으로 방관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화군측에 전쟁 물자를 대줬다고는 하지만, 군대를 파병한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 지원에 댈게 아니었다. 소련이 공화국 좌파 정부를 은밀히 돕긴 했지만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은 스탈린으로서는 히틀러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형편이었다.
국제여단은 스페인 민주공화국을 지원하기 위해 나선, 오직 정의와 양심의 부름에 목숨을 건 순수 의용병이었다. 50여 개 국 약 3만여 명의 청년들 중에는 아나키스트도 있었고, 공산주의자도 있었고, 사민주의자나 자유주의자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조지 오웰이 ‘카탈루냐 찬가’에 썼듯, 국제여단 지도부는 내전 중반 이후 주도권을 둘러싸고 내분을 겪었고 패퇴 후에는 수많은 이들이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 수난을 겪어야 했다.
헤밍웨이도 그 상황들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가 소설 속 한 인물에게 “서로를 돕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단 말이냐”고 말하게 할 때, 어쩌면 그는 제 안의 환멸과도 싸워야 했을 것이다. 국제여단(의 정신)은 환멸과의 전쟁에서는 과연 이겼을까. 헤밍웨이는 61년 자살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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