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호랑이다. 호랑이인간(Weretiger)이다.” 서로 스크린을 맞보고 있는 애니메이션 영상의 양편에서 말레이인 남성과 호랑이가 번갈아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호랑이였고 호랑이가 (서구) 인간을 사냥해 가죽을 둘러썼노라고. 싱가포르 영상작가이자 연출가인 호추니엔의 ‘두세 마리의 호랑이들’은 동남아시아의 전설 속 존재인 호랑이인간을 서구 열강에 대항하는 영웅으로 내세웠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의 첫 전시 주제는 아시아인에게 외침(外侵)과 동의어였던 근대화다. 4개 전시실 가운데 우선 문을 연 한 곳에서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가 2017년 9월 3일까지 열리고 있다. 영어 제목은 ‘인터럽티드 서베이(Interrupted Surveyㆍ중단된 측량)’로, 하인리히 로이테만의 삽화 ‘싱가포르에서의 중단된 도로측량’에서 따왔다. 토지 측량사를 습격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그린 삽화로, 개발 논리에 대항하는 자연의 신비한 힘을 상징한 것이다.
제임스 T 홍은 동아시아의 근대화가 시작된 시점으로 꼽히는 아편전쟁을 중국과 영국 양측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자료로 정리했다. 아편전쟁의 패배는 중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봉건적 사회구조가 무너지는 데 기여했다.
양차대전이 지나고 서구 열강이 사라졌지만, 일부 작가들은 ‘근대인의 침략’이 끝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주체가 서구인에서 자국의 근대 정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덴마크의 영상작가 제인 진 카이즌은 ‘거듭되는 항거’를 통해 1948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4ㆍ3사건을 추적한다. 일본의 하나부사 아야는 ‘성스러운 섬’에서 일본 야마구치현 가미노세키시에서 주민들이 28년 동안 핵발전소 설치 반대 시위를 이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화창조원의 나머지 3개 전시실은 11월 25일 개방된다. 1899-5566
광주=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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