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 특급호텔의 객실 수는 약 18만 실로 일본 도쿄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외래 방한관광객 1400만 시대를 맞아 부족한 숙박시설 확보를 위해 학교 주변 관광호텔 설립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스포츠경제 DB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호텔은 유해시설로 치부된다. 학교 중심 반경 200m 이내(학교 환경위생정화구역)에 호텔을 지으려면 정화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일부 호텔의 불법영업이나 호텔에 입점한 단란주점 등 유흥시설로 인해 이미 유해하다는 낙인이 찍힌 호텔이 심의를 통과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이 법에 의해 호텔과 동일한 규제를 받는 곳은 총포화약제조ㆍ저장소, 폐기물수집장소, 감염병요양소, 유흥ㆍ단란주점, 전화방ㆍ키스방 등 신종유사성행위 업소 등이다. 학교 인근에 호텔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이 법 대로라면 국내여행을 떠나 아이와 함께 호텔에 투숙하면 유해시설에 묵는 것이 된다.
● 세상 바뀌었는데…법은 현실 반영 못해
호텔이 학교보건법에 학교주변 금지시설로 지정된 것이 1981년의 일이다. 당시 방한 외래관광객 수는 100만명을 막 넘겼다. 2014년 한국을 찾은 외래관광객 수는 1,400만명이다. 내국인의 국내 관광수요도 급증했다.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숙박시설이 필요해진 이유다. 그런데 호텔 지을 땅이 없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 관계자는 "서울의 특급호텔 객실은 약 18만 실이다. 일본 도쿄는 서울보다 10배 가까이 많다. 2009~2014년까지 외래관광객 연평균 증가율은 16%에 달한다. 호텔 객실이 부족하지만 약 2,000개의 학교가 밀집한 서울 도심에서 호텔 부지 확보는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숙박 난 해결을 위해 중ㆍ저가 관광호텔이 많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의 관광호텔 객실은 약 3만2,000실로 도쿄, 베이징, 런던, 뉴욕 등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울에서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는 상업지역과 준주거지역 비율 역시 전체 면적의 4.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가깝다는 등의 이유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호텔 건립이 부결된 사례는 서울 76개를 포함 전국 91개나 된다.
● 표류 중인 관광진흥법… 빠른 처리 절실
30여년이 지나 환경이 바뀌었지만 호텔은 여전히 학교주변 금지시설이다. 현실을 반영해 정부는 학교보건법 대신 논란이 적을 것으로 판단해 관광진흥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유흥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에 한해 학교 주변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반대에 부딪혀 개정안은 1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호텔은 그 자체로 아이들 교육에 해가 되는 유해시설"이라는 것이 반대의 이유다. 일부 호텔의 퇴폐 마사지 등 불법영업이나 '러브호텔'로 불리던 모텔 등으로 생긴 인식이다.
업계는 호텔로 인한 교육환경 저해 우려는 지나친 기우라고 말한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제안하는 100실 이상의 호텔업은 외국인 관광객을 주고객으로 하는 숙박시설로 유흥시설 등 부대시설이 없다"며 "흔히 러브호텔로 불리는 모텔과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차원에서 별도 관리하고 향후 유해성 여부를 철저히 추적해 불법영업 적발 시 영업정지 및 등록 취소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현실에 맞는 제도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호텔 설립에 관한 규제는 과거에 비해 많이 완화된 편"이라면서도 "호텔을 아직도 폐기물처리장과 동일하게 보거나 러브모텔로 생각하는 문화와 사고는 이제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노동집약적 호텔…경제 기여도 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6월 관광산업을 '사면초가'에 빠뜨리는 낡은 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호텔 설립 규제를 지적했다. 국회에서 표류 중인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조속하게 처리하라는 요구처럼 보인다.
노동집약적인 호텔산업은 일자리창출 등 경제 기여도가 높다. 실례로 지역주민과 일자리 창출 협약을 맺거나 지역구민 우선 채용 등의 정책을 시행 중인 호텔들이 많다. 호텔업의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당 24.8명으로 제조업의 2.5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지난해 해외 관광객이 한국에서 15조4,748억원을 지출했고 국내에서만 19만9,625개 일자리가 생겨났다고 추정했다. 호텔은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 따르면 '학교 50m 밖 100실 이상 호텔 건립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최근 4년간 금지된 호텔 가운데 투자 재추진 규모, 규제개선에 따른 추가투자 유발효과 등 2017년까지 약 7,000억원의 투자효과가 발생하고 1만7,000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과거 영화관도 학교주변 금지시설로 지정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화생활이 향상되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법 개정을 통해 이제는 유해시설 멍에를 벗었다.
2017년 방한 외래관광객 수는 2,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호텔산업은 외화 획득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효자 산업"이라며 "정부의 철저한 관리와 과거 오명을 씻기 위한 호텔들의 자정 노력이 병행된다면 호텔을 유해시설로 보는 구시대적 시각도 사라질 것이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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