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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축구 심판들은 뭐 해서 먹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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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축구 심판들은 뭐 해서 먹고 사나

입력
2015.10.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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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심판들의 ‘이색 직업’은 4년에 한 번 치러지는 월드컵 본선 대회 때마다 소개되는 단골 메뉴이다. 국내나 해외나 축구심판을 본업으로 살기에는 힘들기에 대부분의 월드컵 포청천들도 저마다의 주 수입원을 가지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민머리의 외모와 단호하고 정확한 판정 능력으로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외계인 주심’피에르루이기 콜리나(이탈리아) 심판의 본업은 세무사다. 당시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 주심을 맡았던 바이런 모레노(에콰도르) 심판은 변호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에르루이기 콜리나 심판. 한국일보 자료사진
피에르루이기 콜리나 심판.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6 독일월드컵에서 한국과 스위스전 주심을 맡아 우리에겐 ‘악연’으로 기억되는 호라시오 엘리손도(아르헨티나) 주심의 본업은 체육교사였다. 이 대회에서는 이집트의 아브델 아셈(항공기 조종사), 파라과이의 마누엘 베르날(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이 이색 직업의 심판으로 눈길을 끌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스포츠 기자인 카를로스 시몬(브라질)과 금융 감독관인 코만 쿨리발리(말리) 등이 이색 직업의 심판으로 이름을 올렸다.

‘평일엔 교편, 주말엔 휘슬’

심판들의 이색 직업은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된 KBS ‘청춘FC-헝그리일레븐’의 연습 경기 주심을 본 서무희(40) 1급 심판은 현재 경기도 파주 소재의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는 지난 2003년부터 13년째 심판 활동을 하며 초·중·고교 리그는 물론 대학, 실업축구, K리그 무대를 밟고 2013년에는 국제심판 휘장까지 단 명판관이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서 씨는 “교편을 잡은 2005년부터는 동료 교사들의 배려와 응원이 없었다면 심판 활동을 이어가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2009년부터 국내 학원축구가 주말 리그제로 개편되며 심판 활동이 보다 자유로워졌지만, 그 때부턴 주말을 오롯이 심판 활동에만 투자해야 했다. 현재 K리그 심판으로 활동 중인 서 씨는 “지금도 배정 하루 전 권역별 거점으로 이동(프로축구연맹은 심판과 구단의 사전 접촉을 막기 위해 심판들을 경기 하루 전 거점숙소로 이동시킨 뒤 경기 당일 오전에 배정된 경기를 통보한다)한 뒤 이튿날 경기에 투입돼 사실상 ‘주말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서무희 심판의 본업은 교사다. 최근 청춘FC가 치른 두 차례 연습경기 (성남FC전, FC서울전)의 주심을 맡은 그는 "청춘들의 도전 현장에서 느낀 감흥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조영현 인턴기자
서무희 심판의 본업은 교사다. 최근 청춘FC가 치른 두 차례 연습경기 (성남FC전, FC서울전)의 주심을 맡은 그는 "청춘들의 도전 현장에서 느낀 감흥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조영현 인턴기자

평일엔 교사, 주말엔 심판으로 활동하는 고단한‘이중 생활’이지만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축구가 주는 가르침이 늘 새롭기 때문이다. 청춘FC의 도전 무대에 자처해 나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청춘FC 선수들의 도전을 옆에서 지켜보며 포기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그는 “벅찼던 그 날의 느낌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정부대전청사는‘심판청사’

중앙행정기관들이 입주해 있는 정부대전청사 곳곳에도 심판 휘장을 가슴에 품은 공무원들이 있다. 올해로 심판 생활 7년차를 맞은 특허청 이주홍(45) 사무관은 대전청사 내 ‘심판 열풍’의 중심이다. 중학교 때 그만 둔 축구선수 생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심판 활동을 시작했다는 그를 따라 동료 공무원들도 줄줄이 심판 자격증 코스를 밟았다. 청사관리소 유지형(45) 주무관이 2009년 심판에 입문한 데 이어, 특허청 남정길(50) 사무관, 통계청 김인식(47) 사무관이 2010년부터 휘장을 달았다.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올해 심판 활동을 잠시 쉬고 있다는 이 사무관은 “항상 본업이 우선시 돼 생각했던 것만큼 꾸준히 활동하긴 힘들지만 활력을 얻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에 근무하는 4명의 심판.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인식, 이주홍, 유지형, 남정길 심판.
정부대전청사에 근무하는 4명의 심판.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인식, 이주홍, 유지형, 남정길 심판.

경기도 일산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오인규(55) 씨도 주말엔 수갑 대신 레드카드를 주머니에 넣는다. 25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 오 씨는 “경찰과 심판은 빠른 판단력과 대처능력, 봉사정신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가끔 ‘저 심판 직업이 경찰’이라는 말이 돈 날이면 판정에 대한 항의가 괜히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며 웃었다.

심판 활동을 하다 축구 행정직에 발을 들인 경우도 있다. 대입 수능을 마친 직후 심판 자격을 획득한 김덕민(25)씨는 현재 한국실업축구연맹의 인턴사원으로 재직 중이다. 김 씨는 “아직은 ‘미생’이지만 심판 활동을 통해 얻은 다양한 현장 경험이 실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심판의 ‘이중생활’을 보는 다른 시각

이 밖에도 환경미화원부터 태권도 관장, 호텔리어, 웹 디자이너, 제주 한라봉 농장주까지 국내 심판의 ‘본업’은 매우 다양하다. 이 같은 심판들의 ‘본업’은 심판들이 금전적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양질의 심판을 육성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심판이 부업으로만 여겨질 경우 그만큼 책임감이나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심판 관계자는 1년 단위의 연봉 계약 제도를 시행중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예로 들며 “스마트볼 등 판독 기술 도입으로 심판의 권한이 축소되는 추세 속에서 보다 전문화를 갖춘 전임 심판의 육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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