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술자리에서의 일. 우연히 잘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게 되었다. 일행 중 한 사람과 친분이 있는 여자 분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편하게 나누던 끝에 여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시인이시라기에 처음엔 안 믿었어요. 시 읽지도 않게 생기셔서.” 풋, 하고 마시던 맥주를 코로 삼켜버렸다. 악의 없는 진심이라 여겨졌을 뿐,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너털웃음 터뜨리며 “하하 감사합니다.”라고 너스레로 넘겼다. 험상궂고 껄렁껄렁한 행동이며 말투가 아무래도 시인이라면 익히 떠오를법한 자태(?)완 거리 있어 보였을 거라 여겼다. 웃음 끝에 문득 시인은 어떻게 생긴 사람이지, 자문해봤다. 베레모에 파이프담배를 물고 그윽하게 먼 곳을 바라보는 얼굴? 식음 전폐하고 골방에 틀어박혀 영혼의 힘줄을 뽑듯 언어의 혈관을 꿰어내는 광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유유자적 술에 취해 음풍농월이나 늘어놓는 한량? 모두 맞는 것도 전부 아닌 것도 같았다.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손에 안 잡히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농부가 밭을 일구듯, 그리고 농부의 얼굴이란 게 비슷한 듯 모두 제각각이듯, 시인 또한 마찬가지. 코나 입이 두 개가 아닌 건 분명하다 여겼다. ‘무엇’처럼 보인다는 게 짐짓 무서워졌다. 험상궂든 껄렁대든 그저 나로 있고 싶었다. 그래서 기분 좋게 계속 술을 마셨다. 나답게, 그리고 그분답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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