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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넘어져도 괜찮아' 손 건네는 제도 있을까

입력
2015.10.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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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인천 송도의 한 골프장에서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가 열렸다. 전 세계의 상위 랭커 24명의 골프선수를 초대해 미국팀 대 인터내셔널팀으로 나누어 겨루는 경기로, 아시아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추어 골퍼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에서 활약하는 프로 골프 선수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경기를 집중해 봤다.

필자도 마지막 라운드 경기를 봤다. 미국팀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깬 호각지세(互角之勢)였다. 미국팀이 1승을 하면 인터내셜팀이 1승을 해서 누가 이길 지 예상이 불가능했다. 집중해 보다 보니 소중한 일요일 하루를 골프 경기 보는 데 시간을 썼다(약속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경기를 본 후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내가 본 중계에 따르면, 샷을 날린 후 클럽을 집어 던진 사람이 딱 두 명 있었다. 배상문 선수와 대니 리(한국 이름 이진명) 선수였다. 대니 리 선수는 뉴질랜드로 이민 갔으나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무한도전' 한 장면.
'무한도전' 한 장면.

다른 선수들이라고 클럽을 집어 던지고플 때가 없었을까. 그래도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분함을 이겨내지 못 한 딱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한국인이거나, 아니면 한 때 한국인이었을까.

이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인들이 유독 패배를 못 견뎌 한다는 사실.

그 이유야 뭐 한 두 가지일까. 수단을 가리지 않아도 승자가 되는 순간 칭송을 받는 사회, 적법절차를 지키고 있으면 바보 소리 듣는 사회, 은메달을 따도 세계 2위 선수에게 통한의 은메달이라며 동정의 기사를 쓰는 사회, 조금만 뒤에 있어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패배는 곧 실패이고 실패는 곧 인생낙오라 간주하는 사회가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인 걸까(그러고 보면 나도 미혼이라는 이유만으로 여기저기에서 보는 수시로 실패한 인생 취급을 받으며 결혼에 초조해 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는 혼자 등산을 갔다가 처음 본 아주머니로부터 “여자가 결혼을 안 하면, 사회에서 그 어떤 일을 하던 실패한 인생이다.”라는 소리도 들어야 했으니).

그래서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남자주인공은 패자가 부활하는 사회를 꿈꾸며 ‘패자부활법’을 발의했다. 한번 실패해도 다시 부활하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패자를 부활하게끔 하는 법제가 전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제도는 회생제도(개인을 위한 회생제도와 법인을 위한 회생제도가 있다)다. 회생제도 중 개인회생이란, 무담보채무의 경우에는 5억원, 담보부채무의 경우에는 10억원 이하인 개인채무자로서 장래 계속적으로 또는 반복하여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자가 3년 내지 5년간 일정한 금액을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의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절차이다. 일시적인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파탄에 직면하고 있더라도 장래 계속적으로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을 경우 채무관계를 조정해주어 채무자의 효율적 회생을 도와주는 제도다.

또 창업주들의 재도전을 지원하는 방안도 발표됐다. 사업 때 가장 꺼리는 것이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표는 각종 회사 채무에 대표이사도 꼭 연대보증을 서기 때문에 회사가 망할 경우 그 창업주도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되고, 한 번 그런 실패를 겪은 사람은 다시 도전할 의지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금융위원화와 중소기업청은 내년 초부터 재창업자의 정책금융기관(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등) 연대보증 채무를 75%까지 감면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기존의 50%보다 감면율을 25% 포인트 올린 것이다. 민간 금융사의 채무에 대해서는 50%까지 깎아 준다. ‘오뚝이’ 창업자가 나오기 어려운 현실을 보완하자는 취지이다.

흔히들 법제는 인정사정이 없다고 보지만, 그렇지 않다. 개인이 회생할 의지가 있으면 이를 뒷받침해주는 제도가 이 밖에도 곳곳에 있다. 하지만 법제가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의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하다. 실패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시선. 지금의 위치가 어떠하든 사람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시선. 그것이 잠시 길을 잃은 사람의 마음에 의지라는 불을 지펴줄 것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임윤선 '누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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