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의 빙하기가 절정을 이뤘던 1만 8,000년 전부터 지구의 기온은 점차 상승했다. 1만년 전쯤에는 매머드와 털코뿔이 등 거대한 동물이 사라지고, 곰과 사슴, 멧돼지 등이 등장했다. 한반도에 살던 고대인은 작고 빠른 사냥감을 잡기 위해 주무기를 창에서 화살로 바꿨다. 돌로 만든 화살촉은 뗀석기(돌을 깨서 만든 석기)에서 간석기(돌을 돌판에 갈아서 만든 석기)로 더욱 날카로워졌다.
기온이 상승하자 농경도 등장했다. 신석기인들은 주로 조와 기장을 재배했다. 곡물과 더불어 도토리ㆍ밤 등 온대성 활엽수에서 채집한 견과류를 큰 토기에 저장했다가 작은 토기로 조리해 먹었다. 해수면 상승으로 연안에 풍족한 어장이 형성되자 어업도 활발해졌다. 물고기를 잡을 작살과 그물, 강을 건널 수 있는 배가 등장했다.
수렵과 채집에서 농경과 어로로 인류 생존기술의 중심축이 이동한 이 때가 바로 ‘신석기 혁명’의 시기다. 이 혁명의 시대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엿볼 수 있다. 20일 개막한 ‘신석기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특별전은 한반도의 주요 신석기 유적인 제주 고산리ㆍ부산 동삼동ㆍ창녕 비봉리ㆍ서울 암사동과 국내 최대 규모의 신석기 시대 묘역인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에서 나온 유물 총 474점을 전시한다.
특히 장항 유적의 발굴 성과 자료가 자세히 소개됐다. 2011년 부산 신항만 건설 기반작업을 진행하다 발견된 장항 유적에서는 한반도 신석기 유적 중 가장 많은 48기의 유골이 발굴됐다. 그 이전까지 출토된 신석기 시대 인골을 모두 합쳐도 20여 기에 불과했었다.
이 곳의 신석기인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한국문물연구원이 인골을 일일이 조사한 결과 사망자들은 커다란 넙다리뼈를 지녀 운동능력이 뛰어났고, 잦은 잠수로 인해 귓바퀴 뼈가 발달했다. 대부분 이가 썩지 않은 것도 이들이 농작물이 아니라 물고기나 조개를 주식으로 삼았다는 증거다. 전시장에는 굴장(몸을 태아처럼 굽혀 매장)된 뼈 위에 조가비팔찌가 놓였던 발굴 당시 장항 1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외에 창녕 비봉리에서 발견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배와 삿대(강바닥을 찍어 배를 나아가게 하는 막대), 부산 동삼동의 그물무늬 토기 등을 통해 한반도 동남 지역에서 어업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농경의 증거도 보인다. 토기 위의 곡물 흔적을 복제해 현재의 곡물과 비교해 정체를 밝히는 흔적 복제 분석 기법으로 조사한 결과, 부산 동삼동 토기와 창녕 비봉리 토기에서 각각 조와 기장의 흔적이 발견됐다. 제주 고산리에서 발견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도 전시장에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부대행사로 29일 동아시아 고대 문명 발생 연구의 권위자인 리우 리 미국 스탠포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개최하고, 12월 11일에는 신석기시대 연구자들을 모아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2016년 1월 31일까지. (02)2077-9000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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