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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경마식 여론조사 그만 두자

입력
2015.10.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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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미국의 통계학자 조지 갤럽은 개인의 정치적 선호를 측정하기 위하여 전체인구를 여론조사하기보다 표본만 설문조사 해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1년 뒤 그는 1936년 미 대선에서 5,000명 대상의 여론조사를 실시해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재선을 맞췄다. 그 뒤 “여론조사기관?”하고 물으면 갤럽이고, “갤럽?”하면 여론조사기관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2012년 갤럽은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롬니가 49%를 얻어, 48%에 그친 현직 오바마 대통령을 이길 것이라는 틀린 예측을 내놓았다. 이달 초 갤럽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경마식 여론조사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여론조사는 피 검사와 유사하다. 피 검사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생체를 난도질해가며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 피의 일부만 뽑아서 한다. 여론조사도 특정 이슈에 대한 반응을 온 국민 하나씩 모두 물어볼 수 없기 때문에 일부만 추출해 진행한다. 뽑힌 피가 전체의 축소판이듯 추출된 설문응답자도 전체 인구를 대표해야 한다. 그래서 여론조사 표본 추출에 임의성은 생명과 같다.

그간 여론조사 기법이 발전하면서 예측의 정확성은 향상되어 왔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은 전 세계에 무선전화를 선사했고 이제는 가정의 유선전화기를 대대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 결과 과거 유선전화에 의존했던 여론조사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최근 10여년 여론조사업계의 과제는 무선전화 이용자의 여론을 반영하는 방법과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읽었던 논문 가운데 하나는 유선전화기 보유자와 무선전화 이용자를 함께 랜덤하게 조사한 것과 유선전화기 보유자만 랜덤하게 여론조사한 결과를 실제 인구구성에 맞게 보정한 뒤 서로 비교할 경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각종 정치현안에 대한 여론조사와 선거후 출구조사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무선전화 이용자의 증가는 물론 낮은 응답률 등은 정치현안 관련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또한 선거 특성에 따라 출구조사의 정확성도 큰 차이를 보였다.

지방선거에 대한 출구조사는 선거구가 너무 작아서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광역시도단체장을 제외하고는 출구조사의 필요성에 공감을 사지 못했다. 총선에 대한 출구조사도 지역구가 200여개가 훨씬 넘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졌고 궁여지책으로 어떤 정당이 몇 석에서 몇 석 정도를 확보할 것이라는 식으로 결과가 공표되었지만 이마저 승패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나왔다. 이에 비해 대선 출구조사는 전국이 한 선거구라 비교적 정확했다. 가령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때 출구조사는 2위와 득표율 격차를 소수점 한자리까지 맞출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총선이나 대선 여론조사는 물론 출구조사의 정확성에 갈수록 의구심이 커지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유권자가 유선전화 대신 무선전화를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2014년 지방선거부터는 사전투표제도가 실시되었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는 사전투표를 이용할 유권자가 더 많아질 것이다. 사전투표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출구조사의 정확성은 떨어진다. 출구조사의 정확성을 위협하는 다른 요소는 사전투표에 대한 출구조사가 현행 선거법상 위법이라는 점이다.

여론조사 기법의 비약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갤럽이 내년 미 대선의 경마식 여론조사와 승자 예측을 포기하는 의미는 매우 심장하다. 갤럽은 매주 1등 한 대선 주자가 누구이고 몇 %포인트 앞서는지 발표하기보다 정책과 공약에 대한 유권자 반응이나 후보 이미지 평가를 조사하겠다고 한다. 한국의 여론조사기관도 선거를 앞두고 경마식 여론조사보다 공약이나 정책 또는 후보에 대한 평가를 조사하고 발표할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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