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규제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무원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서울청사 입구 모습. 한국스포츠경제DB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2월 취임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올해 5월 3일 열린 규제개혁 장관회의 석상에선 "규제는 쳐부숴야 할 원수, 암덩어리"라는 강도 높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선 기업 현장에선 여전히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정책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시리즈로 엮어본다. <편집자주>
(1)공무원이 변해야 한다
중소기업가 A씨는 지난 4월 전남 무안군의 한 마을에서 작은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마을 30여채의 지붕 위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한 뒤 여기에서 얻는 태양광 전력을 한국전력에 판매한다는 계획이었다. A씨는 이같은 사업계획서를 들고 허가를 얻기 위해 관할 지자체를 방문했다.
하지만 그는 사업허가를 거부당했다. 사유는 이랬다. 전기사업법 상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 한국전력 등에 판매할 경우에는 해당 시설물을 공작물로 보아 주거지역에는 이를 설치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단 주택의 지붕 위에 설치된 태양광 설비로부터 얻은 전기를 집안에서 쓸 경우에는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A씨는 이같은 지자체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친환경 에너지를 공급을 위해 기존 주택의 지붕을 이용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납득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새로 부지를 마련해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몇 배는 더 들기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A씨는 곧바로 국무총리실 산하 민관합동규제개선 추진단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관련 부처와 집중 검토작업을 벌인 추진단은 최근 이씨에게 사업허가를 해주도록 지자체에 공문을 내려보냈다. 전기사업법 대신 건축법을 적용해 지붕위의 태양광 설비를 공작물이 아닌 건축물에 부속되는 건축설비로 해석한 결과다. 특히 지붕에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설비가 동일한 상황에서 '자가용'은 되고 '판매용'은 안된다는 것은 태양광 에너지 보급에 장애가 된다고 추진단은 판단했다.
A씨의 경우처럼 공무원들이 융통성이 부족한 좁은 시야의 법 해석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않다는 게 경제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소속 300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공무원의 의식구조 개혁이 규제철폐를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류가 있는 법규에도 '나 몰라라' 식 행태
또 다른 사업가 B씨도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에 민원을 제기해 사업의 숨통을 틀 수 있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유가공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공장을 증축하기 위해 올해 초 기존 990㎡ (300평) 부지에 연접해 495㎡(150평) 규모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했다. 기존 공장은 40%의 건폐율(녹지-관리지역) 한도를 다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공장 증축을 위해서는 추가 부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국토계획법 시행령에는 공장부지 추가 매입 시 증축은 해당 추가 매입부지에 해야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부지를 매입한 뒤 되파는 토지투기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규정이다. 따라서 해당 지자체에선 B씨에게 추가로 매입한 부지에 공장을 증축해야 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B씨는 고민에 휩싸였다. 올해 말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아야 하는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을 위해서는 기존 공장에 붙여 증축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생산공정 상 별도 부지에 공장을 증축할 경우 HACCP 기준을 맞출 수 없는 것.
B씨의 민원을 제기받은 추진단은 추가로 매입한 부지에 공장을 짓도록 규정한 것은 기업 현실에 맞지않다고 보고 올해말까지 관련 시행령을 개정해 B씨가 기존부지에 연접해 공장을 짓도록 허용키로 했다.
B씨의 경우처럼 정부의 시행령이나 각종 규정이 기업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 부지기수라고 기업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에서 20여년간 수출기업을 운영해 온 한 중소기업인은 "공무원들은 시행령 등이 현실에 맞지 않아도 도무지 바꿀 생각을 하지않아 애로가 많다"고 말했다..
자기 일만 챙기는 공무원 조직
경기도에서 작은 식품회사를 운영하는 C씨는 공무원들의 자기 앞만 보는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새로운 식품제조를 위해 때로는 몇 개 부서에 걸쳐 해결해야 하는 업무가 있어 지자체를 찾으면 공무원들끼리 '다른 과에 가서 먼저 알아보고 오라'는 답변을 일삼아 이 과 저 과를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하느라 진을 빼기 일쑤다. 또 여러 과가 관련될 경우 업무처리도 지연돼 민원을 넣은지 때로는 한 달 넘게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때 내부적으로 공무원들끼리 협의를 하면 보다 빠르고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의 한 관청담당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자기 일만 대충 하며 적당히 시간만 보내면 월급도 나오고 정년이 보장되지 않느냐. 서비스 정신이 민간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자신의 앞가림을 위해 건수올리기식 규제도 적지않다는 지적이다. 앞서의 식품회사 사장 C씨는 "불시에 공무원들이 단속을 나와 샅샅히 뒤져도 흠잡을 게 없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공무원이 그냥 돌아가면 상사로부터 '하루 종일 놀고 왔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며 트집을 잡지않아도 될 것을 지적하고 돌아가는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전향적 태도변화에는 제도적 뒷받침 필요
한 지자체 현직 공무원은 "규제개혁의 느슨함과 관련해 공무원을 일방적으로 질타할 일이 아니다. 관계법령을 폭넓게 해석해 민원인의 요청을 들어줬다가 정기 감사에서 법을 잘못 적용했다고 징계를 받으면 인사상 큰 불이익을 받는다. 보수적으로 민원인을 대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 자문교수인 조선대학교 행정복지학과 이민창 교수는 "무조건 공무원은 나쁘다는 인식은 곤란한다. 공무원들이 느슷하게 법규를 적용하거나 유권해석을 했다가 감사에서 지적을 당하면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제도적으로 이같은 불이익을 받지않을 장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경기도가 지난해 말부터 시행하고 있는 감사컨설팅 제도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감사컨설팅 제도는 경기도 산하 시-군-구 공무원이 근거법령의 모호함, 법령과 현실과의 괴리 등으로 인해 능동적인 업무추진을 하지 못하는 경우 사전에 업무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도청 감사실에 자문하는 것이다. 이렇게 도청 감사실의 검토를 거쳐 업무를 시행할 경우 추후 감사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는 장점이 있다. 한 기업인은 "규제관련 담당 공무원은 내부 줄서기에 신경쓰지 말고 한국경제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근무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시했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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