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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객은 왕일까

입력
2015.10.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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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직원과 통화하면 마음이 늘 불편하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시작하는 인사말은 길기도 하고 기계적이어서 거북하다. 제품ㆍ서비스의 문제점을 말하면 “아유, 많이 불편하셨죠”라며 공감까지 해주는 통에 더 부담스럽다. 일면식도 없는 고객에게 하루 수백 번 사랑한다 말해야 하는 직원들은 오죽할까. 불만 제기를 넘어 욕설을 퍼붓는 진상 고객조차 밝은 목소리로 응대해야 하니 텔레마케터가 감정노동 강도 1위 직업으로 꼽힐 만하다.

▦ 감정노동자들의 친절은 기업의 고객만족 경영과 닿아 있다. 기업은 고객이 제품ㆍ서비스에 만족하고 감동하면 재구입을 하게 되고, 신규 고객도 창출돼 매출과 이익이 확대되리라 기대한다. 이 선순환 사이클이 항상 작동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시장에는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로 무장한 새 경쟁자가 반드시 등장하기 때문에 고객 이탈은 불가피하다. 해서 기업은 고객관리를 더 강화하고, 그럴수록 고객관리 담당 직원의 ‘친절 스트레스’는 높아지게 된다.

▦ ‘고객은 왕’은 고객만족 경영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1838~1922)가 1890년대초 사용한 이 표현은 원문이 ‘The customer is always right’로, ‘고객은 항상 정확하다’는 뜻이다. 고객의 불만에 제대로 귀 기울여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인데, 이것이 국내에서 ‘고객은 왕’으로 탈바꿈했다. ‘왕’이라는 표현 하나에 고객은 절대군주 대우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됐다. 과연 법 규범이 지배하는 지금 시대에 이 표현의 효력은 여전히 유효할까.

▦ 백화점 점원들이 여성 고객 앞에서 무릎을 꿇은‘갑질 고객’논란이 또 불거졌다. 7년 전 구입한 녹슨 귀금속의 무상 수리를 요구했다니 어이가 없다. 고객이 무릎 꿇으라 시키진 않았다지만 계속 반말로 다그치고 윽박지른 걸 보면 오십보백보다. 고객은 자신이 구입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지불한 값만큼의 권리를 가진다. 그 권리도 시간이 지나면 소멸된다. 정말 매장에서 왕 같은 대접을 받고 싶다면 매장 직원의 입장도 고려하는 왕 같은 품위와 격조를 갖추는 게 우선이다. 기업도 진상 고객에 절절 맬 일이 아니다. 진상 고객 대응 지침을 제대로 수립ㆍ시행했다면 매장 직원들이 이런 모멸을 당했겠는가.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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