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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작가 “시대의 비극이 낳은 자투리 인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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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작가 “시대의 비극이 낳은 자투리 인간의 이야기”

입력
2015.10.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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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를 맞은 소설가 한승원씨는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글이 나오면 살아있는 줄 알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희수를 맞은 소설가 한승원씨는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글이 나오면 살아있는 줄 알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오래 전 좌익 활동으로 아버지와 형제를 잃은 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를 꼭 소설로 쓰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올해 희수(喜壽)를 맞은 소설가이자 시인 한승원씨가 신작 ‘물에 잠긴 아버지’(문학동네)를 펴냈다. 19일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한씨는 “시대의 비극이 남긴 트라우마 때문에 자투리의 삶을 살게 된 사람의 이야기”라고 책을 소개했다.

소설의 배경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장악해 한동안 ‘모스크바’라고 불렸던 전남 장흥군 유치면이다. 남로당 골수분자를 아버지로 둔 김오현은 전쟁 후 부모와 할머니, 네 명의 형들까지 처참하게 죽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쥐 죽은 듯 살아간다. 옆집 노총각에게 아내를 추행 당하고 대출까지 끌어다 시작한 장사가 쫄딱 망해도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참는 그는 다만 끊임없이 자식을 생산할 뿐이다. 11명이나 되는 자녀는 철저하게 삶에 복종한 것처럼 보이는 김오현이 세상에 항거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한씨는 “문인들 중에는 아버지가 남로당원인 사람들이 몇 있다. 이들은 이념의 잣대 안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고 삶 자체가 무언의 저항이었다”며 “이들을 이념의 뿌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일한 희망이던 장남이 연좌제에 묶여 사법고시에 떨어진 후 오현은 서울로 올라가 고층빌딩 유리를 닦으며 살아간다. 질곡 많은 삶은, 장성한 자식들이 제 밥벌이를 하게 되고 오현 자신도 서울살이에 적응하면서 안정기에 접어드는 듯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이 된 아홉 번째 아들 칠남이가 아버지의 고독한 삶을 시로 쓴 것을 읽고 오현은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낸다.

“소설의 배경인 유치면은 2006년 장흥댐이 완공되면서 지금은 물에 잠겼습니다. 잠기기 전에 수 차례 방문했는데 한국사의 상흔 일부가 물에 잠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처럼 일평생 저항 없이 살아간 김오현의 삶도 그 속에 녹아 들어 승화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작품은 한씨의 스물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57세에 고향 장흥으로 돌아가 작품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매일 소설 생각만 하며 산다”고 말했다. 준비 중인 차기작이 어머니 이야기라는 것도 귀띔했다. “나이가 드니 글이 둔해진 것 같아서 더욱 몇 번이고 검토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살아 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겁니다. 제 글이 나오면 제가 살아 있는 줄 아시면 됩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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