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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아내가 뒷목 잡는 이유, ‘수컷의 방’ 때문이 아니다

입력
2015.10.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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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TV를 보다가 이른바 ‘충격과 공포’를 느낀 적이 있는데, 바로 XTM에서 방송 중인 ‘수방사(수컷의 방을 사수하라)’였다.

‘수방사’는 평범한 남자(기혼자)의 의뢰를 받은 제작진이 그 남자의 취미와 기호를 무한대로 살려 아내 몰래 집 인테리어를 완전히 바꿔주는 것이다. 경천동지할 만한 인테리어 변화를 보고 좋아 죽는 남편, 그리고 이를 마주한 아내의 충격에 빠진 표정. 그 대조적인 반응, 그리고 남자 편에서 추임새를 넣어주는 고정출연자(김준현, 정상훈, 홍진호)의 예능감이 이 프로그램의 재미 포인트다.

1회부터 좀 쇼킹했다. 낚시광인 의뢰인을 위해 제작진은 집 안에 실내낚시터를 만들어줬다. 몇 톤에 달하는 물을 싣고 와서 실내저수지에 부어 넣는 대공사 장면도 스펙터클(이라고 쓰고 어이없다고 읽는다)했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무료 워터파크 표를 갖고 아이들과 신나게 하루 종일 놀다가 귀가한 아내가 넋 나간 표정을 짓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2회에는 캠핑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거실을 실내 캠핑장으로 바꿔줬고, 3회에는 게임광 남편의 방을 게임방으로 바꿔놓았다. 4회에는 야구광 남편이 주방의 일부를 야구 타격 및 투구연습장으로 뜯어고쳐 놓았다.

어쩌면 이 글을 읽게 된 남자들 중 대부분은 한 평범한 아줌마가 이 프로그램을 보고 펄펄 뛰며 화를 내는 반응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가 나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황당한 내용이긴 했지만, 프로그램의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참신하고 놀랍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위) 실내낚시터편, (아래 왼쪽) 캠핑장편, (아래 오른쪽) 야구연습장편.
(위) 실내낚시터편, (아래 왼쪽) 캠핑장편, (아래 오른쪽) 야구연습장편.

일단 제목이 참신하다. ‘수도방위사령부’를 가리키는 ‘수방사’를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라는 컨셉트로 풀어낸 것도 재미있다. ‘수방사’라는 단어부터 한국 남자 냄새가 물씬 나지 않나.

또한 이 프로그램은 그 동안 방송이 그냥 지나쳐왔지만, 사실은 정말 간절했던 대한민국 남자들의 ‘판타지’를 채워주고 있다. ‘한국 남자들은 자기 집에 가도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점은 대부분의 기혼남성들이 느끼는 어떤 ‘울분’과 맞닿아 있다. 내 집에서 딱 내 취향대로 꾸미고 내가 즐길 공간이 없다는 울분을, 누군가 눈앞에서 ‘내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서 풀어주는 것이다. 말 그대로 판타지 구현.

그래서 의뢰인들은 확 바뀐 인테리어를 확인하기 전에 안대로 눈을 가리고 집에 입장한다. 과거 MBC 일밤 ‘러브하우스’ 같은 컨셉트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잔뜩 기대치를 높인 뒤 깜짝 놀랄 만한 장치들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리얼하다. 자신의 방을 게임방으로 바꾼 의뢰인은 방 안에 대형 스크린, 음료수 냉장고에 인터폰까지 설치된 걸 보고 난리가 났다. 주방을 줄이고 야구연습장을 만든 의뢰인은 공이 자동으로 올라오는 타격기계, 각종 훈련기구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판타지의 백미는 부글부글 화를 참는 아내의 표정을 보는 것. 이 장면을 보는 재미는 또 다른 곳에 있다. 내 맘대로 다 되고, 그래서 아내는 펄펄 뛰는 장면을 늘 꿈 꿔왔으면서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자 의뢰인들은 연신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수방사' 아내의 속마음을 고백하는 보너스 동영상. 영상 캡처
'수방사' 아내의 속마음을 고백하는 보너스 동영상. 영상 캡처

이 프로그램의 아이디어가 정말 괜찮다고 무릎을 탁 친 건 또 다른 데 있다. 방송에선 공개되지않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아내의 속마음’ 인터뷰다. 이게 진짜 재미있다.

인터뷰를 보기 전에, 바꿔놓은 인테리어는 한 달 정도 사용해본 뒤 부부 합의 하에 철거를 원하면 제작진이 그대로 철거해 준다는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졸지에 집 안에 실내야구장을 설치하게 된 아내는 “철거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캠핑장이 생긴 아내는 “아이가 좋아해서 그리 나쁘진 않았다. 남편이 청소를 잘 하고 유지를 잘 시키면 그대로 두고, 아니면 철거하겠다”고 한다. ‘게임방 아내’는 “놀라긴 했는데, 생각보다 정리정돈이 잘 된 느낌이었다”며 웃는다.

남자들이 알지 모를지 모르겠는데, 사실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내들이 확 뒤바뀐 인테리어를 보고 기겁하는 이유는 ‘이 집은 죄다 내 공간인데, 그걸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다. ‘아니, 이걸 대체 어떻게 청소하고 유지하겠다는 거야’가 포인트다.

한국 남자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면서도 집안에 그걸 만들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에 있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데, 주말에는 내내 침대와 합체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자가 ‘내 공간을 내놓아라. 그리고 그 공간은 니가 치워라(혹은 치우지 말고 더러운 채로 둬라)’고 말 하면 아내들은 백이면 백 모두 괴성을 지를 것이다.

현실적으로 요리와 청소의 80~90%를 아내가 책임지는 상황이라면, 집에서 남자의 공간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자들에게 집안의 ‘공간’이란, 내가 일 하고(밥 하고 빨래 널고 아이와 놀아주고), 내 손으로 직접 쓸고 닦으며 가꾸는 동안 내 것이 되고 애정이 묻어나는 곳이다. 반면 남자들의 ‘야성’ 속엔 ‘공간’이란 게 곧 ‘영역표시’인 듯하다. 그래서 집안에서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면 무시당하고 힘이 없어지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이런 부분이 제대로 부딪치면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미워하며 서로 섭섭한 마음만 들 뿐이다. ‘수방사’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남편과 ‘아내가 뿔났다(채널A)’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아내가 만난다면, 그들의 인생은 곧 막장드라마가 되어버린다. 판타지는 TV 보며 풀고, 집에선 내가 누군가를 위해 참고 양보해야 한다는 걸, 사실은 결혼한 사람들 모두 알고 있다. 그렇게 ‘남자’나 ‘여자’가 아닌, ‘어른’ 답게 살아야 아이들이 웃는다. ‘슈퍼맨이 돌아왔다(KBS)’의 삼둥이들처럼. 방송 칼럼니스트

<수방사(수컷의 방을 사수하라)>

XTM 매주 화요일 밤 11시

집에 들어가도 할 것이 없는 남자, 화장실만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 남자. 가족을 위한 모든 것을 내어준 남자들의 반격! '집'을 통째로 점령한 아내를 향한 남편들의 대 공습이 시작된다!

★시시콜콜 팩트박스

1.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수방사’는 현재 정규편성이 확정돼 매주 화요일 밤 11시에 자리를 잡았다.

2. 고정출연자 김준현, 정상훈, 홍진호 중 실제 기혼자인 사람은 김준현과 정상훈이다. 그래서인지 이들 둘의 표정이 매우 리얼하다.

3. 4회까지 ‘수방사’의 평균시청률은 0.4%(닐슨코리아 기준)다. 이 프로그램이 공식적으로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와이프 졸도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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