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본부 외주 직원이 1000장 절도
검수하다 뒤늦게 범행 알아채 회수
국내 화폐 관리를 총괄하는 한국은행에서 20여 년 만에 현금 절도 사건이 재발했다. 비록 도난 당한 돈을 되찾기는 했지만, 중앙은행 수중의 돈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외부로 유출되면서 한은의 화폐 관리 체계가 또다시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18일 한은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한은 부산본부 지폐 정사(整査)실에서 외주업체 직원 김모(26)씨가 5만원권 1,000장(5,000만원)을 훔쳐 반출했다가 적발돼 긴급체포됐다. 정사는 한은이 자동화기기를 이용해 시중은행에서 회수한 지폐 중 다시 쓸 수 있는 돈을 골라내고 그렇지 않은 돈은 분쇄하는 작업으로, 한은 본점 및 지방본부 7곳에서 수행하고 있다.
2년 넘게 정사 현장에 상주하며 자동정사기 이상시 보수를 담당해온 김씨는 이날 재활용 가능으로 분류된 5만원권을 부품상자에 넣어 별다른 제지 없이 들고 나간 뒤 자신의 원룸에 두고 1시간 만에 다시 돌아와 근무를 계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은은 이날 현금 검수 과정에서 돈이 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폐쇄회로(CC)TV 재확인 등을 거쳐 김씨의 자백과 현금을 확보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조사 결과, 김씨의 범행 과정에서 한은의 화폐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김씨는 지폐정사실 내 현금을 놓아두는 곳이 CCTV 사각지대라는 점을 알고 돈을 빼돌렸다. 당시 현장에는 한은 직원 16명이 김씨 등 외주업체 직원 2명과 작업 중이었지만 ‘외부 용역업체 직원은 한은 내부직원이 관리ㆍ감독해야 한다’는 내부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김씨가 돈을 훔쳐 드나드는 과정에 소지품 검사 등의 감시 절차도 작동하지 않았다.
한은은 사건 당일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각 지역본부에 ▦화폐정사 업무 과정 특별 점검 ▦외부업체 직원 관리감독 강화 ▦CCTV 사각지대 여부 재점검을 지시했다. 또 사고가 일어난 부산본부에 대해 특별감사에 착수, 규정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징계 조치할 계획이다.
한은이 관리 중인 화폐를 도난 당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모두 부산본부에서 일어났다. 1994년 부산본부 직원 김모씨가 자동정사기를 조작, 분쇄되지 않은 폐기 대상 지폐 4억2,000여만원을 빼돌린 것이 첫 사례로, 이듬해 한은 내부에서 사건을 축소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명호 총재가 사퇴하고 직원 8명이 중징계를 받았다.
부산=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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