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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장발장’ 처벌 대신 구제 나선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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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장발장’ 처벌 대신 구제 나선 경찰

입력
2015.10.1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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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범죄 갈수록 증가하자 경미범죄심사위 시범 운영

피해 적거나 단발성인 경우 심사 589명 중 510명 감경 처분

치매 초기 증세로 3년째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A(74ㆍ여)씨.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남편과 단둘이 살아온 A씨는 주위에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왔다. 그런 A씨에게 지난달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형마트에서 바나나와 우유, 식빵 등을 가방에 몰래 넣고 나오려다가 직원에게 걸린 것. 형사 입건된 A씨는 일흔 넘은 나이에 전과자가 되는 것도 걱정됐지만 엄마를 범죄자로 바라 볼 자식들 낯이 더 두려웠다. 자포자기한 그에게 뜻밖의 희망이 찾아왔다. 생활고로 인한 ‘장발장형’ 범죄였다는 사연을 들은 관할 경찰서가 경찰과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경미범죄심사위원회’를 열어 A씨에 대한 구제를 결정한 것. 위원회는 A씨가 치매로 고통 받고 동종 전과도 없는 점을 감안해 즉결심판으로 처분을 감경해줬다.

지난달 음식점에서 손님 신발을 훔쳐 달아났다가 형사 입건된 고교생 B군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경우다. B군은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처지였지만 관할 경찰서는 경미범죄심사위의 현미경 검증을 거쳐 즉결심판을 청구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계속된 취업난과 경기불황으로 생계형 범죄가 증가하면서 경찰이 현대판 장발장 구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17개 경찰서가 올해 3월부터 경미범죄심사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경미범죄심사위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취지로 경찰서가 자체 선정한 형사범 등을 대상으로 사실 관계, 피해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처분을 감경해 주는 제도. 가령 형사 입건된 사람 중 심의를 거쳐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 즉결심판 청구로 감경해 벌금만 내게 한다든지 아예 훈방을 하는 식이다. 시범 운영의 성과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경미범죄자 589명을 심사했는데 이중 86.6%(510명)가 A씨처럼 감경 처분을 받았다.

경미범죄심사위의 도입은 최근 몇 년 새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0년 9만6,027건이었던 100만원 이하의 소액 강ㆍ절도 규모는 2014년 19만1,590건으로 5년 사이 2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강ㆍ절도가 27만3,819건에서 26만8,450건으로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확연한 증가세다. 소액절도의 원인으로 ‘생활비 부족’을 꼽은 비율도 16.9%에서 26.5%로 증가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미한 죄질에 걸맞은 즉결심판 청구나 통고(범칙금)처분 등 낮은 수위의 처벌은 오히려 줄었다. 생활형 범죄 가운데 즉결심판 청구 처분 건수는 2012년 5만1,311건에서 2014년 4만5,263건으로 감소했고, 통고처분 역시 2010년 8만6,592건에서 2013년 5만5,455건으로 줄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가 적거나 호기심에 의한 단발성 범죄인데도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경미범죄심사위의 온정주의나 자의적 판단 가능성 등 구제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경찰은 변호사, 교수 등 전문가 그룹과 일반 시민을 망라한 심사위원 풀을 다양화해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미범죄심사위 역할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자리잡은 만큼 내년부터는 4억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해 전국 경찰서로 확대ㆍ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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