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리뷰
“그대를 이곳으로 인도하리라, 사랑의 축복이 깃드는 곳으로! 승리의 용기와 순수한 사랑은 그대들을 행복한 한 쌍으로 결합시키리라!”
‘결혼행진곡’으로 알려진 합창곡 ‘혼례의 노래’가 울려 퍼지자 객석은 경건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17일 대구 북구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오페라 ‘로엔그린’은 바그너 특유의 화려하고 복잡한 작품을 단순한 무대와 군더더기 없는 음악으로 해석해 선보였다. 독일 비스바덴 국립극장이 현지 무대 버전을 재연한 것으로 올해 13회를 맞는 대구오페라축제에서 국내 첫 원어 공연을 해 화제를 모았다.
바그너 중기를 대표하는 이 작품은 미지에서 온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과 영주의 딸 엘자의 사랑 이야기다. 4시간에 달하는 연주, 교향곡에 맞먹을 만큼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관현악 반주, 그 반주를 뚫을 정도의 강렬한 음색을 갖춘 성악가가 필요해 국내에서 가장 접하기 어려운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로엔그린 역의 테너 마르코 옌취는 맑고 깨끗한 음색이었지만 관현악 반주를 뚫지 못한 미소년 성량으로 극 초반, 이야기를 제대로 끌지 못했다. 무대 심도를 조정해 장면 전환을 이룬 공연의 특성상 옌취는 무대 뒤쪽에서 노래를 부를 때가 많았는데 이런 설정이 그의 작은 성량과 맞물려 주요 아리아에서 힘을 더 잃게 만들었다. 그를 대신해 극을 이끈 건 엘자를 맡은 소프라노 에디트 할러였다. 깨끗하고 서정적인 음색으로 난곡들을 차례로 소화하며 엘자의 내적 불안과 배신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프리드리히 백작을 맡은 바리톤 토마스 데 브리스 역시 안정된 음색을 보였고, 1막 불안정한 음정을 선보인 메조소프라노 안드레아 베이커(마녀 오르트루트) 역시 2~3막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작품에 재미를 더했다.
반주는 국내 예술팀(대구국제오페라오케스타라)이 합류했는데, 금관부 파트가 약한 국내 오케스트라 특성상 장중하고 강렬한 금관부를 통해 복잡 심오한 철학을 전하려 했던 바그너 오페라를 제대로 소화하기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던 듯하다. 작품의 백미인 로엔그린이 백조가 이끄는 선함을 타고 오는 장면 역시 커다란 백조 그림 LED 장면으로 대체해 아쉬움을 남겼다.
대구오페라축제는 ‘치명적 사랑’을 주제로 ‘리골레토’(21,23일), ‘진주조개잡이’(30~31일)‘가락국기’(11월 6~7일) 등을 공연하며 다음달 7일까지 이어진다. (053)666-6000
대구=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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