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계 최고층 불법 거주 공동체를 통해 본 미래의 도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계 최고층 불법 거주 공동체를 통해 본 미래의 도시

입력
2015.10.16 20:13
0 0

토레 다비드

어반 싱크탱크 외 지음ㆍ김마림 옮김

미메시스 발행ㆍ480쪽ㆍ2만8,000원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시 중심부에 선 토레 다비드는 세계 최고층의 수직형 빈민가다. 이곳을 불법 점유한 3,000여명의 거주민들은 자율 공동체를 형성하고 터전을 개조하며 거주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메시스 제공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시 중심부에 선 토레 다비드는 세계 최고층의 수직형 빈민가다. 이곳을 불법 점유한 3,000여명의 거주민들은 자율 공동체를 형성하고 터전을 개조하며 거주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메시스 제공

남미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시 중심부에는 45층짜리 미완공 건물이 있다. 오일 머니를 주체하지 못하던 1990년 착공된 이 건물은 1993~94년 개발업자 다비드 브릴렘버그가 사망하고 베네수엘라에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건설이 중단됐다. 20년째 철골과 콘크리트를 드러낸 채 도심 복판에 방치된 건물, 본명도 잊혀진 채 이제 ‘토레 다비드(다비드의 탑이라는 의미)’라 불리는 이 건물의 현재 주인은 불법 거주자들이다.

이 책은 건축디자인회사 어반 싱크탱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직형 무허가 거주 공동체 토레 다비드에 들어가 2년여간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이다. 2007년 이 건물을 점유한 불법 거주자들은 현재 750가구, 3,000여명으로 규모가 불어나 자신들만의 자율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다. 언제 쫓겨날지 몰라 외부의 관심과 출입을 극도로 경계해오던 거주자들에게 어반 싱크탱크는 끈질기게 접촉하며 건물 개선 방안을 제시해 마침내 문을 열었다.

“건물의 구조적 한계를 무릅쓰고, 이들은 굉장한 수준의 사회적 교류, 잘 훈련된 지도 체제, 민주적 절차 그리고 종교적인 유대감을 길러내는 데 성공했다. 보안이 취약한 거주 환경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더 나은 생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환경을 개선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 공간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공간을 개선하려는 이러한 충동은 모든 인간에게 타고난 본성이다. 하지만 역사를 통틀어 이만큼 독보적이며 건축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건축가들은 토레 다비드에 대한 접근에 정치적 요소가 일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들의 관심사는 가난한 자들이 거주지를 획득하는 방식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도시의 탄생 및 정착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그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의 도시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는 것이다.

토레 다비드의 내부. 3,000여명의 거주민들의 스스로 정한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미메시스 제공
토레 다비드의 내부. 3,000여명의 거주민들의 스스로 정한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미메시스 제공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토레 다비드는 교회, 농구장, 미용실, 식료품점뿐 아니라 전기, 상하수도, 쓰레기처리 등의 기반시설까지 갖춘 소도시와 다름 없었다. 거주민들은 농구팀을 결성해 주변의 다른 불법 거주자들과 시합을 벌이고, 엄마들은 한데 모여 수다를 떨면서 자전거 탄 아이들이 짓다 만 난간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감시한다. 상생을 위한 규범 체계도 엄격해, 지나친 소음, 가정 내 폭행, 무단 쓰레기 투기 등을 금지한 규정을 세 번 이상 어긴 가구는 토레 다비드에서 추방된다. 거주자 협동조합의 대표자인 글라디스 플로레스는 각 층의 관리자들이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지 감독하고 주민들의 불만사항을 접수하며 분쟁을 중재한다. 거주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안정된 거주의 약속으로, 이들은 지방자치단체에 전기세를 납부하면서 합법적 거주지로서 공인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어반 싱크탱크의 철저한 ‘건축적 시선’은 토레 다비드를 한 편의 눈물 다큐멘터리로 끝내 버리길 거부한다. 이들은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는 와중에 새로운 건물이 계속 올라가고 한 편에선 집이 없어 떠도는 자들이 여전한 상황을 고발하며, 건축가와 도시정책 결정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건축가가 이름을 날리던 시대는 끝났으며, 이제는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자신의 역할이 축소될 각오- 예를 들어 이미 지어진 건물을 개보수하는 -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날카롭고 양심적인 건축가들의 기록물은 사진작가 이반 반의 끝내주는 사진과 만화가 안드레 기타가와의 그래픽 노블이 어우러져 한 권의 작품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어반 싱크탱크 외 지음/ 김마림 옮김/ 미메시스 발행/ 480쪽
어반 싱크탱크 외 지음/ 김마림 옮김/ 미메시스 발행/ 480쪽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