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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동네책방의 탄생

입력
2015.10.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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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리동 '퇴근길책한잔', 밴드 공연·영화 상영·수다모임

이태원 '햇빛서점', 국내 첫 성소수자 관련 서적 전문

성수동 '책방이곶', 소규모 강연·출판기념회 종종 열어

지난달 초 창성동 헌책방 가가린의 폐업 소식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애도의 물결이 출렁댔다. “고마웠다” “영추문길이 많이 쓸쓸해질 것 같다” “동네의 몰개성이 성큼 상승할 것 같다” 등 ‘일개’ 서점을 향한 것 치곤 애절하기까지 한 작별인사들이 꼬리를 물었다. 2008년부터 회원들이 위탁한 책과 흥미로운 독립출판물을 판매해온 가가린은 서촌에 젊고 개성 강한 비주류 문화가 안착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다. 대형 출판사와 서점이 주도하는 베스트셀러 열풍에 끼고 싶지 않은 이들은 여기서 독립출판물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가가린은 단순한 서점이 아닌 취향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했다.

가가린은 사라졌지만 뒤를 이어 새로 문을 연 독립서점들이 강력한 취향 공동체를 통해 지역을 바꾸는 일을 성실히 수행 중이다. 올해 문을 연 독립서점 세 곳을 통해 앞으로 해당 지역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점쳐 봐도 좋을 듯하다.

그림 1염리동 '퇴근길책한잔'에선 매달 밴드 공연과 수다모임이 열린다.

염리동 골목에 자리한 ‘퇴근길책한잔’은 지난 주말 자리를 비운 주인장 대신 서점 고객이 문을 열었다. “부산에 놀러 가는데 손님 중 직장을 안 다니시는 분이 대신 봐주겠다고 하셔서요. 편할 때 나와서 문 닫고 싶을 때 닫으시라고 했죠.”

벤처사업을 하던 김종현씨가 책방을 연 건 올해 4월이다. 김수영 시집, 로맹가리 산문, ‘월든’, ‘공산당선언’ 등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독립출판물들로 공간을 채워 넣었지만 애초부터 책 판매만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정기 밴드 공연과 영화 상영회, 각종 수다 모임으로 많게는 30명까지 사람이 모이는 커뮤니티다. “손님 중에 동네 주민은 없어요. 여기 어떤 책이 있다는 걸 알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죠. 책 취향이 같으니 생각도 비슷하고 금세 공감대가 형성돼요.” ‘돈 없이 즐겁게 살기’를 모토로 한 수다모임 ‘자발적 거지’에선 얼마 전 사표 쓰는 법이 주제로 등장했다. 20~30대인 참가자들은 직장에 묶이지 않은 주인장의 삶을 부러워했고, 이들은 실제로 사직할 때 어떻게 말을 꺼낼 것인가를 두고 시뮬레이션까지 하며 토론했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이후 진짜로 회사를 관두고 연희동에 책과 술을 함께 파는 바를 냈다. 김씨는 “별 아이디어 없이 시작했는데 일단 공간을 열어놓으니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고 계속 새로운 일이 만들어진다”며 “앞으로도 같이 만들어가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림 2 지난달 이태원 이슬람사원 인근에 문을 연 '햇빛서점'은 국내 최초의 성소수자 책방이다.

지난달 초 이태원에 문을 연 ‘햇빛서점’은 국내 최초의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트랜스젠더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성소수자를 의미) 책방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박철희씨는 성소수자의 이미지가 술집이나 클럽에만 집중된 것이 싫어서 이 공간을 차렸다. “게이로서 밤이 아닌 낮에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성소수자들이 썼거나 LGBT를 주제로 한 책들을 소개하되, 성소수자임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양성화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책들을 주로 선보이려고 합니다. 나중엔 출판기념회나 워크숍도 열 계획이에요.”

책 중엔 ‘사랑의 조건을 묻다’나 ‘친절한 게이문화 안내서’처럼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쓴 책도 있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자신의 욕구와 고민을 밝고 솔직하게 풀어낸 책들도 눈에 띈다. ‘도쿄1인생활’은 일본에 사는 레즈비언이 영국에 유학 중인 연인의 부실한 식단이 안타까워 직접 만든 레시피 책이다. 애틋함이 묻어나는 자세한 요리법과 군침 도는 음식 사진이 시너지를 일으켜 초판 600부가 전부 팔렸다. 곧 창간하는 게이잡지 ‘뒤로’도 입고 예정이다. 박씨는 “진지하게 차별 폐지를 주장하는 것보다 그냥 성소수자들이 해맑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웃었다. 현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영업한다.

그림 3성수동 '책방이곶'에선 주인장의 취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고영권기자younkoh@hankookilbo.com

5월에 문 연 ‘책방이곶’은 독립출판의 중심인 강북에서 멀찍이 떨어진 성수동에 터를 잡았다. 의류유통회사에서 일하다가 문득 때려치우고 서점을 낸 이동원씨는 성수동을 택한 이유를 “그냥 싸서”라고 답했다. 노출콘크리트와 오래된 철제 캐비닛, 절판된 콜라병 등으로 꾸며진 이곳에선 개인이 자가출판한 책과 주인장이 선별한 문학 인문서, 외국의 한정판 사진집, 희귀 중고서적 등을 볼 수 있다. 이씨는 책 선정기준을 “자기계발서만 아니면 된다”고 말했다. “유명한 사람들의 생각은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에서도 볼 수 있잖아요. 독립서점의 매력은 우리가 지하철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거죠.”

다른 주인장들과 달리 수줍은 성격의 이씨는 활달하게 모임을 조직하진 않지만 소규모 강연이나 출판 기념회는 종종 연다. 특히 제주도에 관심이 많은 그는 얼마 전 ‘제주도 사용법’이란 토론회를 통해 제주도를 상업적으로 소비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참가자들과 대화했다. 의자 인심이 후해 열 명 넘게 앉아 맘 편히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홈페이지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곧 온라인에서도 책을 구매할 수 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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