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회 '성적 괴롭힘 예방 세미나'
"원치 않는 전화" 피해자 74% 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거는 행위’
스토킹 피해자들이 제시한 가장 흔한 스토킹의 행태다. 한국여성학회와 한국여성연구학회협의회 주최로 16일 숙명여대에서 열린 ‘권력형 성희롱 및 성적 괴롭힘 예방을 위한 세미나’에서 로레인 셰리던 호주 커틴대 보건학부 교수는 스토킹의 유형을 크게 7가지로 나눴다. 스토킹 피해자 1,700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다. 가장 많았던 응답은 전체의 74%(중복 포함)가 경험한‘원치 않는 전화’였다. ‘미행’을 겪은 피해자는 70%로 그 뒤를 이었고, ‘집에 찾아오기’(65%), ‘피해자에 대한 거짓말 유포’(63%), ‘자살 협박’(62%), ‘원치 않는 편지 등 각종 글’(62%)의 순이었다. 스토킹의 사전적 정의인‘따라다니기’는 60%의 피해자가 경험했다. 스토킹 가해자는 다른 범죄자보다 사회ㆍ경제적 지위가 높은 편이었고, 겉으로는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특징이라고 셰리던 교수는 부연했다.
이 세미나는 국내의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관련 제도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국내에서는 한 30대 남성이 전 여자친구의 부모 앞에서 여자친구를 살해, 지난 달 25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이 남성도 “염산을 얼굴에 부어버리겠다”는 등 위협적인 내용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피해자에게 계속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스토킹을 경범죄 상‘지속적 괴롭힘’으로 처벌하고 있지만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그치는 등 처벌이 미약해 실효성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높다. 미국, 영국, 호주 등에는 이미 10~20년 전부터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취급하는 강력한 법안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성계에서는 현재 경범죄 처벌법으로는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며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1999년 이후 스토킹 관련 특별법이 8차례나 제출됐지만 폐기되거나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스토킹의 정의가 모호하고 규제범위를 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다.
최희진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국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스토킹은 형태가 다양해 기존 형법으로 규정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며 “살인ㆍ폭력 등이 일어나기 전 단계에서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별도의 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혜 서울경찰청 피해자보호계 경사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구애 과정은 다소 강제적이더라도 ‘박력 있다’고 여겨져 왔지만, 실제 스토킹 사건에는 로맨스 대신 집착과 폭력, 피해자의 고통만 있다”며 “스토킹 처벌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된다면 스토킹이 더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절히 개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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