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의 기자 출신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발맞추어 일본 미디어는 알렉시예비치와 후쿠시마의 인연을 집중해 보도했다. 수상작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출판 대국 일본답게 이미 1998년 출간되었지만,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직후 다시 간행되어 주목을 받았다.
그 무렵 일본에서는 방사능 위험에 대해 공개적 발언이 어려운 분위기였고 원전 사고와 관련된 모든 정보 공개가 극히 제약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공포를 개개인의 상상력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으므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타인’의 비극을 넘어 동일본 거주민들의 미래를 읽는 담론이 된 것이다.
지난 달 중순 방사능과 쓰나미 피해가 극심했던 후쿠시마현 하마도오리를 방문했다. 3박4일 동안 도미오카초 공무원, NPO 법인 노마도 관계자의 안내로 일본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을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직접 체감할 수는 없었지만, 오염된 토양을 걷어낸 봉지가 갈 곳을 잃고 질서정연하게 쌓여있는 광경을 보면서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음을 느꼈다.
방사능에 절대적 안전치는 없다고 한다. 동행한 연구자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하는 숫자란 그 이하는 책임을 못 진다는 선언에 불과하단다. 자본과 권력의 힘으로 정치적 차원에서 수치를 완화시키고 ‘안전’을 말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된다. 후쿠시마 지역에서 피난 지시가 해제되어도 귀환하는 주민은 거의 노인들뿐이며, 젊은 세대와 특히 어린이를 키우는 세대들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첫 날 방문했던 도미오카초 지자체가 귀환을 강요하지 않고 ‘당분간 보류’라는 제3의 선택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 오히려 미더웠다.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후쿠시마의 목소리(기억)’는 무관심(망각)과 대치 중인 듯하다. 약 4,000명이 참가한 후쿠시마 원전 소송단 단장은 전쟁 책임자 처벌을 하지 않은 일본의 ‘전후’ 체질을 가장 큰 문제로 거론했다. 3ㆍ11 이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어느 누구도 진상 규명을 회피하고 원전사고를 책임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오히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후쿠시마의 원상 회복과 안전 선언을 하기 위한 홍보에 혈안이 되어있다.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쓰기 위해 무려 10년에 걸쳐 신중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큰 재난 직후에 개떼처럼 몰려들어 자극적인 일화를 중심으로 ‘재해를 소비’하고 사라지는 미디어의 속성을 경계한 것이리라. 아무튼 10년에 걸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내부 피폭이 인간과 자연에 불러일으키는 잔혹한 변화를 리얼하게 드러낸 인류의 기록이 되었다.
일본에서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내부 피폭과 차별을 문제 삼은 원폭 문학의 명작 ‘검은 비’, ‘대지의 무리들’ 등이 원폭투하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등장한 점을 상기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것을 정리하기까지는 아직 먼, 불안을 잠재한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한국의 미디어를 접하면 원전 자체에 대한 심각한 논의보다도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의 먹거리만 차단하면 안전이 보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과연 그러한가.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 홋카이도 원전을 방문했던 알렉시예비치에게 일본 원전 관계자는 “체르노빌 사고는 원전 관리가 허술한 사회주의 국가 구소련의 특수 상황”이라며 일본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한다.
그러나 그의 책은 후쿠시마의 예언서가 되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체르노빌-후쿠시마의 비극은 원전과 원자로를 보유한 모든 사회에 잠재되어 있다. 알렉시예비치의 오래된 예언서를 미래에 보고 싶지 않다면, 지금 한반도 역시 우리들에게 주어진 오늘의 숙제라고 생각해야 한다.
고영란 일본 니혼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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