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웬만한 식당에서는 ‘발레 파킹’이라는 안내판과 주차 보조원을 두고 있다. 세계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이 말은 이미 global 용어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valet를 ‘발레’나 ‘발래’로 발음하는데 영어권에서는 ‘밸레’ ‘밸릿’ 이 가장 흔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밸릿’과 ‘밸레이’를 놓고 어떤 발음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한 단어의 발음이 다양한 이유는 영어권의 사전들이 그 발음을 다르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Cambridge 사전에서는 ‘밸레이 파킹’으로 발성한다고 소개하는 반면 미국의 전통 사전 Merriam-Webster사전에서는 ‘밸-릇’으로 소개한다.
유럽 국가인 프랑스에서는 valet를 ‘밸리’라고 발음한다.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고 묵음처리하는 것은 이 말이 중세기 이전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Valet는 분명 14세기 고대 프랑스어 vaslet(man’s servant)에서 온 말이고 그보다는 더 오래 전에 라틴어 vassallus(servant)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현대에는 valet de chambre(male household servant of the meaner sort)에서 볼 수 있듯이 ‘집사’라는 뜻으로 쓰인다. 수백 년 전의 의미는 고관대작 주인님의 ‘남자 비서’였는데 오늘날 ‘남자 주인을 위한 남자 개인 비서’ ‘집사’ ‘손님을 위해 자동차 주차를 해 주는 사람’ 등으로 그 의미가 변한 것이다.
Valet은 중세기 이전에 ‘vallit’로 스펠링하기도 했고 그 발음은 당연히 ‘밸릿’이었다. Oxford 사전에 따르면 17세기 당시 vallit의 발음은 ‘발릿’이었다고 전한다. 150년이 지나자 valet발음은 ‘밸레이’로 바뀌었다. 왕정복고 시대(the Restoration)에는 프랑스의 격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밸레이’ 발음은 상스럽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밸릿’으로 발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세기가 들어서자 다시 ‘밸레이’ 발음이 유행했다.
미국의 보수적인 영어 사전 Heritage Dictionary에서도 val-ay(밸레이) 발음과 ‘val-it(밸릿)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일부 상류층에서는 ‘밸레이’ 발음은 자동차를 주차해 주는 보조원의 뜻이고 ‘밸릿’은 개인 비서나 집사를 지칭한다고 구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발음을 해야 할까? 일반 대중이 주차 보조원(valet)이나 valet parking을 말하고 싶을 때 ‘밸레이 파킹’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니, 이 흐름에 발을 맞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비슷한 철자의 fillet도 ‘필릿’과 ‘필레이’가 모두 가능한 데 적어도 미국에서는 후자 발음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통학자들은 여전히 ‘밸릿’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학습자 입장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발음인 ‘밸레이’로 발음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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