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에서 15일 ‘단둥 궈먼완 북중변민(邊民)호시(互市)무역구’ 출범식 행사가 열렸다. 중국은 연면적 4만㎡ 규모의 이 곳에서 반경 20㎞ 이내 북중 주민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며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호시’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류윈산(劉雲山) 중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 직후 개장해 얼어붙었던 북·중 경제협력에 해빙을 가져올 신호탄이 될 지에 대한 관심과 100년 전 일제의 침범으로 사라진 양국 국경간 유서 깊은 호시무역이 되살아난다는 역사적 의미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은 행사다.
이곳에서 거래를 하면 1인당 하루 8,000위안(약 150만원)까지 관세가 면제된다. 중국이 이웃 나라들과 호시를 개설한 곳은 77곳이다. 스젠(石堅) 단둥시장은 축사에서 “북중 호시무역은 북중 무역의 훌륭한 무대를 제공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단둥은 동북아의 물류 중심지, 해상 실크로드의 찬란한 진주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북중호시무역구에서 실제로 물건을 팔러 온 북한 주민들을 볼 수는 없었다. 사실 출범식도 반쪽 행사였다. 축사도 탕선페이(唐審非) 랴오닝성 대외경제무역협력청 부청장, 단둥 궈먼완 호시무역구의 투자운영측인 단둥진퉁(金通)그룹의 천취안퉁(陳全統) 동사장, 스 단둥시장 등 3명의 중국측 인사만 했다. 김영남 주선양(瀋陽)북한총영사관 부총영사가 참석을 했지만 축사는 하지 않았다. 이날 일부 북측 귀빈은 연락을 제대로 못 받아 행사가 끝난 뒤 도착하는 모습도 보였다. 중국은 북측 인사들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사를 치렀다. 2년여 간 냉랭했던 북한과 중국의 소통 부족 현 주소를 보여주는 듯 했다.
북한이 호시에 앞으로 얼마나 호응할 지도 미지수다. 중국은 이전에도 북한과 호시를 열려고 했지만 북한은 주민 통제 곤란 등을 이유로 줄곧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2010년에도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에서 호시무역이 열렸다가 흐지부지된 바 있다. 돤무하이젠(端木海建) 단둥 궈먼완 호시무역구 부총경리도 “북한 기업들은 내년 4월 입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 가 봐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기대감은 분명 커지고 있지만 북중 경협 본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반면 이날 호시무역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단둥(丹東)시 궈먼완(國門灣)국제무역센터는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1년 전 준공됐음에도 아직 개통식을 열지 못한 신압록강대교가 끝나는 곳에 자리잡은 이 전시장에서는 제4차 북중무역박람회(북중상품전람교역회)가 열리고 있다.
연분홍 치마와 색동 저고리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젊은 북한 여성들은 전시 제품들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 목청을 높였다. ‘먼 적외선기술을 이용한 휴대용 치료기’를 들고 나온 조선경림무역회사 관계자는 “고려의학과학원에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한 제품”이라며 “북중 박람회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북한 업체들이 이날 내 놓은 제품은 벌꿀과 고추장 등 각종 식품, 산삼술과 대동강맥주 등 주류, 담배와 약품 등이 대부분이었다. 공산품은 드물었고 첨단 전자제품 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이 내 놓은 제품은 공업품과 기계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시장의 2층으로 올라가자 북한 화가들을 직접 만나볼 수도 있었다. ‘공훈예술가’ 또는 ‘1급화가’인 이들은 자신의 이력을 소개한 안내판을 옆에 세워 둔 채 화폭을 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단둥에 산다는 한 중국인은 “지난해에 비해 사람들이 더 많이 온 것 같다”며 “최근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북한을 방문한 뒤 관심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작년과 비교할 때 북한측의 참가업체 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는 북한 기업들이 2층까지 꽉 들어 찼었지만 이번엔 2층이 한산했다”며 “북한 기계류도 올해는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단둥 북중박람회장과 호시무역구 주변엔 준공이 됐는데도 텅 빈 아파트와 아예 건설이 중단된 고층 아파트 건물이 즐비했다. 랴오닝성은 중국의 31개 지방 정부 중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가장 낮았다. 중국이 북한에 적극적인 이유이다. 북한 국적으로 중국에서 사업하는 리모씨는 “류 상무위원의 방북으로 북중 관계는 완전히 복원됐다”며 “국익을 위해서 일단 어려운 문제는 놔 둔 채 쉬운 문제부터 접근하는 것이 중국의 외교적 태도로 남한과는 구별된다”고 말했다.
단둥=글ㆍ사진 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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