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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이 또한 지나가면 안되리라

입력
2015.10.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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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의 왕 솔로몬 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한 아이를 두고 다투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반씩 나눠가지라’고 판결해 친어머니를 찾아준 것이고, 또 하나는 좌우명을 찾는 선왕인 다윗왕의 반지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를 새겨준 것이다. 전자의 경우 진정한 사랑과 욕심을 구별한 명 판결이고, 후자의 경우 지나친 교만과 절망을 경계한 명문이다. 그런 솔로몬도 말년에 대성전을 건축하느라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동족 일부를 노예처럼 부려 민족분열의 빌미를 제공했으니 세상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수원과 화성시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역화장장 갈등을 보고 있자면 솔로몬의 혜안이 아쉬워진다. 판결은 미루고, 시간이 지나 민원만 잠잠해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화성 광명 부천시 등 경기 서부권 5개 지자체는 화성시 매송면 숙곡리 함백산에 2017년까지 화장로 13기 등을 보유한 광역화장장을 짓기로 합의했다. 숙곡리는 화장장 유치 공모를 통해 선정된 곳이다. 그러자 함백산을 경계로 이 곳과 직선거리로 2km 가량 떨어진 서수원 일부 주민들이 환경피해를 우려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이곳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회의원까지 주도적으로 나서자 주민민원을 무시하지 못한 수원시는 ‘어정쩡한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수원시 역시 화장장(연화장)을 별 문제 없이 운영하는 입장에서 적극 반대하기는 뭣해 취한 태도다. 하지만 국토부가 ‘그린벨트를 화장장 땅으로 바꿔줘도 괜찮겠냐’고 의견 조회한 데 대해 반대입장을 유지하고 경기도의 의견청취에서도 ‘민원해결이 필요하다’고 토를 달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 즈음 경기연구원은 ‘화장장이 들어서더라도 서수원 주민에게는 담배 한 개비보다도 못한 다이옥신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화성시의 손을 들어줬다. 이 연구는 수원시가 의뢰한 것으로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연구기관은 별 문제 없다는 데 주민들이 이미지 추락까지 감수하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형국이 됐다.

주민 반대에 수원시장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믿은 화성시장은 거꾸로 수원비행장의 화성 이전을 직을 걸고 막겠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화성시 홈페이지에는 ‘수원비행장 이전 반대’ 팝업창을 띄워놨고, 같은 당 소속으로 원만한 관계였던 두 단체장은 이제 말도 섞지 않는 사이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안은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판단이 내려지면 끝나게 돼있다. 중도위가 해당 부지의 그린벨트관리계획 변경안을 승인하면 화성시는 자체적으로 착공에 나서면 그만이다. 물론 반대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만약 수원시가 경기연구원의 발표가 있을 때 어정쩡한 반대입장을 취하지 않았더라면 서수원주민의 더 큰 숙원인 비행장 이전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명분은 이미 화성시로 넘어갔고, 반대를 외치는 국회의원은 비행장 이전 역시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모순에 빠진 처지가 됐다. 반대 주민에게 적정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수원시 전체가 갖게 될 이익에 비하면 약소하다. 어차피 미온적으로 반대할 거라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주민 설득에 나서는 편이 나았다. 당시 화성시가 모바일 등을 통한 재 여론 조사에 나섰어도 문제가 이렇게 꼬이지 않았다는 일부 의견이 있으나 무리한 주장이다.

이제 두 지자체는 중도위의 판단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는 동안 판단과 결정이 늦어지면서 생기는 비용문제와 당사자간 합의를 포기하고 책임을 상급기관에 떠넘기는 나쁜 선례는 또 하나 만들어 지고 있다.

올해로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20년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의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이제 과감하게 정책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단체장이 나올 때가 됐다. 매사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는 게 지자제 정신일 리는 없다.

이범구 경기본부장 eb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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