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장면 바뀌는 저 부분에서 우조길이 계면길로 바뀌죠? 판소리는 길바꿈 기법(변조, 전조기법)의 무수한 자원이 있는 노래입니다.”
7일 오후 국립국악원 누리동 대회의실. 류형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의 설명이 끝나자 질문이 쏟아진다. 수강자들은 이미 대중음악계에서 활동 중인 작곡가와 연주자들. 국립국악원이 올해 7월 처음 개설해 11월까지 운영하는 ‘대중음악작곡가 국악작곡 아카데미’는 14명 모집에 가요를 비롯해 영화음악, 게임음악 분야의 유명 작곡가 101명이 지원했다. 강연에 참석한 가수 이한철은 “국악과 다른 장르를 섞은 인디그룹을 주목한 건 4~5년 전부터다. 잠비나이, 고래야 등의 음악을 듣다가 이 강연까지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즈 색소폰연주자 신현필도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최근 2~3년 새 국악에 관심 갖는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부쩍 늘었다. 국악이 강한 무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악원은 이 프로그램을 매년 정례화할 계획이다.
전통악기와 헤비메탈, 인디록, 뉴에이지 등을 섞은 ‘3세대 국악’이 뜨고 있다. 전통 주법을 있는 그대로 복원한 국악이 1세대, 25현 가야금 등으로 ‘캐논변주곡’ 같은 서양음악을 연주한 퓨전국악이 2세대라면, 3세대는 전통악기를 해체해 새로운 소리를 만들고 전자기타, 드럼 같은 대중악기와의 접목에도 적극적이다. 새로운 국악에 대중음악계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드러머 남궁연은 “세계적인 악기회사에서 국악 샘플링을 시작해 내년이면 전통악기 소리를 담은 신디사이저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3세대 국악의 아이콘은 밴드 잠비나이다. 거문고 연주가 전자기타, 드럼과 맞물리다 벽을 뚫을 것 같은 피리, 태평소 소리로 이어지는 ‘소멸의 시간’, 생황과 베이스의 몽환적인 연주와 투명한 거문고 가락이 팻 매스니를 떠올리게 하는 ‘커넥션’ 등으로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이들(3세대 국악)은 비행기 타고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후 국내에서 주가를 높이는 ‘제트플라잉’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잠비나이, 숨 등은 네덜란드 전문 에이전시인 어스비트와 계약을 맺고 해외 여러 도시를 순회 공연하고, 판소리창법을 바탕으로 독특한 음색을 내는 가수 최고은 역시 세계 최대 음악축제인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초청받았다. 8일 만난 잠비나이 멤버 이일우는 “내년 중반 영국 유력 음반사를 통해 정규 2집이 전세계 발매된다”고 말했다. 케이팝 아이돌 그룹도 못 이룬 성과다.
전통에 머물지도, 수입해 온 것도 아닌 3세대 국악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한 음악’이 특징이다. 남궁연은 “잠비나이, 고래야, 최고은 등의 음악은 단순한 퓨전국악이 아니라, ‘월드뮤직의 한국 버전’처럼 들린다. 서양음악을 듣고 자란 국악 전공자들이 음악을 만든 결과”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그냥 서양음계를 전통악기로 연주했다면 잠비나이 세대의 음악인들은 국악기에 가장 잘 맞는 화성을 쓴다.”
잠비나이의 이일우(피리 태평소 생황 기타) 김보미(해금 트라이앵글) 심은용(거문고 정주)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통악기를 전공했고, 대중음악과 탱고 등에도 전문적 식견을 자랑한다. 김보미는 “록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이일우가 작곡하고, 각 연주자들이 악기 특성에 맞춰 의견을 나누고 고치는 식으로 곡을 만든다. 앨범은 대중성을 고려해서 3,4분 내외 짧은 곡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가야금을 켜면서 ‘요즘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 라이터 정민아, 국악연주자들이 인디록밴드와 의기투합한 그룹 고래야, 타니모션 역시 전통음악을 전공하고 대중음악 밴드 등에서 활동하다 2010년 전후로 데뷔, 홍대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음악인들은 그러나 이런 유행이 한차원 발전하기 위해서는 악기 개량, 플랫폼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다. 남궁연은 “한국 전통악기는 음정이 부정확하고, 화음이 없고, 변박이 많아 8비트 연주가 힘들다. 서양음악과 협연하고, 녹음이나 공연에 적합하도록 국악기를 개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영익 악당이반 대표는 “국악그룹이 많이 나왔지만, 명멸 속도도 빠르다. 이들의 저작권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는 정책과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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