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만추’ 주인공 훈 역 맡은 이명행

홑꺼풀의 작은 눈, 낮고 오똑한 코, 얼굴 3분의 1을 가리는 두툼한 뿔테안경. 학창시절 이렇게 생긴 친구가 꼭 한 명쯤 있었다 싶을 정도로 평범하게 생겼다. 대학로 캐스팅 0순위로 꼽히는 배우 이명행(39)이다. 이 평범한 얼굴이 무대에만 오르면 만화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풍부한 표정으로 바뀐다. 천만가지 표정은 발랄하면서도 진중한 연기, 매끄러운 발성과 맞물리며 당대 어떤 캐릭터도 소화할 수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만든다. 동성애자(연극 ‘프라이드’), 여장남자(‘거미여인의 키스’), 형사(‘뜨거운 바다’), 심지어 소로 변해가는 인간(‘소’)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아온 그가 이번에는 멜로 연기에 도전한다. 1966년 고 이만희 감독 이후 6번 리메이크 된 영화 ‘만추’를 무대화한 동명의 연극에서 남자 주인공 훈을 맡았다. 2007년 고선웅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마방진 1기 배우로 시작한 이명행의 첫 멜로물이다.
12일 중구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만난 이명행은 “나이가 들수록 분위기만으로 관객에게 여운을 주는 작품이 좋아진다. ‘만추’는 상처받은 두 사람이 미묘한 지점에서 느끼는 사랑을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여자 애나가 어머니의 부고로 3일간 외출을 나와 우연히 마주친 남자 훈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에 거부감은 없다. 다만 제가 현빈씨 역할을 하는 게 부담스러워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두 번째 제안을 받고는 욕심이 나더라”고 말했다. 이번 연극은 여러 편의 ‘만추’ 리메이크 영화 중 2011년 현빈, 탕웨이가 주연한 영화를 모태로 삼았다.
영화 속 훈과의 차별화를 위해 그는 이번 작품에서 훈을 30대 중후반 남자로 설정했다. “잘 생기고 젊은 호스트에서 사연도 상처도 많은 남자로 캐릭터에 살을 붙이면서” 극 중 비중도 늘었다. 고아로 자라 생모를 찾아 미국으로 가지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듣는 등 아픈 사연들이 덧붙여졌다. “애나는 이야기만 따라가도 캐릭터에 깊이가 생겨요. 영화 속 훈은 애나보다 캐릭터가 단순한데다, 영화에서 범퍼카 타면서 두 사람이 느끼는 세밀한 감정 변화 같은 걸을 무대에서 표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저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외롭고 아픈 사람이구나’하는 무게감을 줄 수 있게 신경 쓰죠.”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버스 안, 오리버스를 타면서 데이트하는 놀이공원 등 여러 장면은 유머와 어색함이 뒤섞인 특유의 ‘이명행표 연기’가 더해져 영화보다 더 알콩달콩한 느낌이 든다. “헤어진 사람 다시 만나는 것처럼 절절한 감성의, 가을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죠. 원작을 반영하면서도 보너스 트랙처럼 덧붙여진 이야기들도 숨은 재미를 드릴 겁니다.”
11월 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02)588-7708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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