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중이었다. 5층 강의실 창 밖으로 같은 재단 여자고등학교의 운동장이 보였다.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떼를 지어 피구를 하고 있었다. 깔깔대는 아이들의 수다소리가 귓전까지 닿는 것 같았다. 청량한 분위기였으나, 왠지 매캐한 슬픔 같은 게 느껴졌다. 잠깐 수업을 중단하고, 카메라를 줌인 해 몇 컷 찍었다. 날은 매우 흐렸다. 곧 수업을 재개했으나, 수업과 상관없는 얘기를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기분이 뒤숭숭했고 날씨는 께름칙했다.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내려 올 무렵, 천둥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무슨 거대한 슬픔이나 분노의 아우성 같았다. 운동장은 텅 비어있었다. 피구 하던 아이들 모습이 꿈결 같았다.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 들고 나왔으나 바람이 거셌다. 억지로 무언가를 가리려 들고 있다는 자책이 들었다. 우산을 접고, 비바람 속을 걸었다. 더 깊게 젖고 더 아프게 떠돌고 싶었다. 그렇게 한동안 걷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왔다. 뼛속까지 추웠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뒤졌다. 피구를 하고 있는 여고생들 모습. 전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 1년 전 그날이 거기 겹쳤다. 그래도 혼자 슬퍼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날을 기억하는 것 말고는. 가끔씩 무슨 원죄라도 되는 양, 그날을 거듭 돌이키는 것 말고는. 딱 6개월 전, 4월 16일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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