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한 이혼 협의를 위해 남편을 통신도 안 되는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징역형을 선고 받은 아내가 위자료까지 물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윤강열)는 남편 A(59)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아내 B(51)씨와 강제 감금을 도운 응급환자 이송업자 C씨, 정신병원은 총 2,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2010년 5월 20일 오후 2시. 경기 이천시 한 정신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마친 A씨에게 C씨 등 남성 3명이 달려 들었다. 이들은 A씨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도복끈으로 손발을 묶어 후송차에 밀어 넣었다. 약 2시간을 내달려 도착한 곳은 충북 보은군의 한 정신병원. 병원 직원은 “너 하나 죽어도 표시 나지 않으니 조용히 들어가자”며 A씨를 폐쇄병동에 넣었다. 꼼짝 없이 낯선 정신병원에 감금된 A씨는 이틀 뒤인 밤 10시 병원 3층 흡연실에서 뛰어내려 가까스로 탈출했다. 납치부터 탈출까지 56시간은 그에게 극심한 공포 그 자체였다.
이 납치극의 배후에는 아내가 있었다. 당시 남편과의 이혼 협의에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 기획한 범행이었다. 2007년 결혼한 부부는 A씨가 알코올 의존증과 우울증으로 폭력적 성향도 보이면서 관계가 틀어져 2년 뒤 별거했고, 이혼과 재산분할 협의를 시작했다. B씨는 시어머니에게 이혼 협의 중인 사실을 숨기고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고 치료를 받지 않는다.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결혼 생활을 계속 하고 싶다”고 속여 입원 동의서를 받아 냈다. 아들과 수년째 연락이 끊긴 시어머니는 며느리 말만 믿었다.
정신병원에 남편을 넣을 수 있는 서류를 구비한 B씨는 응급이송업자 C씨를 불러 남편을 경기 이천시의 정신병원에 넣었다. 하지만 A씨가 외부 연락을 허락한 병동에서 법적 구조요청에 나서자 B씨는 “통신이 안 되는 폐쇄병원을 찾아달라”고 C씨에게 요구했다. 결국 A씨가 납치돼 다른 정신병원에 강제 구금됐다. 아내는 남편을 납치한 차량을 뒤따라가며 범행 성공 여부를 주시했고, 정신과 담당 의사에게 “남편이 과대망상에 성중독증이 있다”고 증상을 부풀려 말했다. 의사는 A씨를 3년 가까이 치료해온 주치의에게 상의 한번 하지 않고 B씨 말만 믿고 폐쇄병동 입원 조치를 내렸다. 의사는 심지어 당뇨가 있는 A씨가 먹어서는 안 되는 정신분열증 치료제를 처방하기도 했다.
가까스로 탈출한 A씨는 B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 갈라서게 됐지만 불법감금 사실이 확정되지 않아 되레 부인에게 재산분할로 23억8,000만원과 위자료 4,000만원을 지급하란 판결을 받고, 아들 양육권도 빼앗겼다.
이후 공동감금 혐의로 기소된 B씨와 이송업자 C씨는 올해 7월 1심에서 각각 징역 2년, 징역 6월을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A씨는 다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혼조건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위해 원고를 54시간 동안 감금해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러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송업자에게도 “불법 감금이 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를 어겼다”고 판단했으며, 병원 재단에는 “직원이 원고를 협박하고, 의사가 위험할 수 있는 약을 처방하는 등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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