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한국관광공사 제공
가을은 유난스럽지 않아 정이 간다. 화려한 꽃으로 교태를 부리지도 않고, 찬란한 녹음이나 새하얀 눈송이로 눈을 현혹하지 않는다. 하늘은 이토록 맑은데도 야단스럽지 않으며, 빛깔 고운 단풍조차 곰삭은 시간의 향기를 풍기며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러니 가을에는 눈과 귀가 내면으로 쏠리고, 그래서 더욱 그리운 것들 많아진다.
제주의 가을이 이렇다. 부산스럽지 않으면서, 오랜 된 벗처럼 자꾸 그리워지는 은근함이 매력이다. 푸른 바다와 원시의 숲,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한 오름과 심장에 각인되는 상쾌한 바람….
성산읍 삼달리의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이 천연한 제주의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가을에 더 운치가 있다.
이름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김영갑은 1982년부터 제주의 사진을 찍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다 제주의 자연, 아니 '제주'에 반해 1985년 아예 섬에 눌러 앉았다. 이후 20여년을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채우며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렌즈에 담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2005년 루게릭병을 얻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다.
두모악은 병마가 막 그를 찾아왔을 때 폐교를 이용해 손수 꾸미기 시작한 공간이다. 투병 중에도 두모악 만들기에 전념해 2002년에 끝내 문을 열었다. 이 악착 같은 공간에 제주의 바다, 중산간, 한라산과 오름, 들판과 구름을 들였다. 아름다운 공간에 아름다운 자연이 가득하다.
스스로 일군 공간에서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뼈가 이곳에 뿌려졌다. 이러니 그는 죽어서도 애태우며 사랑했던 이 평온한 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두모악은 크지 않다. 서둘면 둘러보는데 채 30분도 안 걸린다. 그런데 이 작은 공간에 발 들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눌러 앉게 된다. 프레임 속의 나무와 바다와 바람에 빠져 도무지 자리를 뜨지 않게 되니 두모악은 마법의 공간이다. 사진 참 아름답다. 영상실에서는 그의 생전 영상을 볼 수 있다. 유품전시실에는 그가 사용하던 카메라가 전시 중이다. 그의 생애와 어우러진 제주의 자연들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작품을 통해 제주의 자연을 감상하고 절박하고 애틋했던 한 사람의 생애도 음미한다. 들머리의 예쁜 정원 거닐며 하늘도 올려다보고 바람도 즐긴다. 갤러리 뒤편에 있는 무인카페에 들러 차도 한잔 마신다.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참 따뜻해진다. 이렇게 한나절 보내고나면,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가 비단 단풍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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