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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어든] 정몽준, 이젠 FIFA 대망의 꿈을 접어야 할 때

입력
2015.10.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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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명예회장은 지난주 런던에서 열린 축구 컨퍼런스에서 꽤 좋은 연설을 했다. 그는 컨퍼러스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 청취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가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대상은 세계 축구계였다. 블래터에 대한 언급을 할 때면 정 회장은 앞에 앉은 기자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신의 의중을 전달하려 했다.

정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 블래터를 비난했고 그 수위도 높았다.

“이제 FIFA는 부끄러움의 표상이 된 듯하다. FIFA를 마피아라 부르는 것은 마피아에 대한 모욕일 정도다. 너무 노골적으로 또 거만하게 부정을 저질러왔다. FIFA에서는 돈과 권력이 블래터의 눈을 멀게 했다. 그는 스포츠맨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나는 블래터 회장을 법정에서 횡령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다”

정 명예회장도 알고 있었겠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세계 언론에서 중요한 헤드라인으로 등장했다.

정몽준 명예회장.
정몽준 명예회장.

이제 정 회장은 FIFA 윤리위원회가 내린 6년 자격 정지에 대한 항소를 하려고 한다. 정 회장은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FIFA 윤리 위원회는 과거에도 그러한 일을 한 전적이 있는 집단이다. 플라티니와 블래터는 90일의 자격 정지를 얻었는데, 이론적으로만 보면 이들은 여전히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선거가 연기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정 회장과 FIFA의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이제는 FIFA를 포기해야 할 때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정몽준과 FIFA의 시간은 끝났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자격 정지에 대해 항소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고,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FIFA 회장이라는 꿈은 접는 게 옳다고 본다.

FIFA도 변하고 있다. 블래터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의 생존 능력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잡초보다 더 강인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블래터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플라티니 역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 FIFA는 완전한 개혁이 필요한 시기이고, 아예 밑바닥부터 모든 것이 다 바뀌어야 한다.

FIFA 윤리위원회가 블래터 회장과 플라티니 회장에게 90일 직무정지 징계를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사진은 지난 7월 20일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에서 열린 집행위원회 중 영국 코미디언 사이먼 브로드킨이 뿌린 가짜 돈을 맞고 있는 모습. AP
FIFA 윤리위원회가 블래터 회장과 플라티니 회장에게 90일 직무정지 징계를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사진은 지난 7월 20일 스위스 취리히의 FIFA 본부에서 열린 집행위원회 중 영국 코미디언 사이먼 브로드킨이 뿌린 가짜 돈을 맞고 있는 모습. AP

정 회장은 개혁에 대해 이야기해왔지만, 솔직히 말해 정 회장이 개혁에 적합한 인물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정 회장은 FIFA를 투명하게 바꾸겠다고 했다. 그 말 자체에 대해서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이는 정 회장의 진심일 것이고 정말 그렇게 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정 회장이 다른 인물들처럼 부정하게 돈을 챙겨야 할 처지는 아니다. 그는 이미 천문학적인 자금력을 갖춘 사람이기에 돈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이제 바라는 것은 훌륭한 이름과 유산을 남기는 일이다. 만일 그가 FIFA 회장이 되어 단체를 개혁한다면 축구계에 영원히 이름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정몽준 회장을 개혁의 열쇠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징계가 사라져서 떳떳해진다 해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을 듯하다. 세계 축구계는 정몽준 전 FIFA 부회장을 ‘과거의 일부’로 여긴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하지 않았던 개혁을 지금 갑자기 한다고 하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부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겠지만, 임기 당시 정 회장은 개혁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다. 물론 정 회장은 블래터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몇 사람 중 하나이긴 하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윤리위원회 조사 계획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윤리위원회 조사 계획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정 회장은 자신이 블래터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기 전부터 그를 비판해왔다고 강조했다. 사실이다. 하지만 블래터를 비난하고 싫어해 온 것과 FIFA를 개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어필하기가 어렵다. FIFA가 그렇게 썩어들어가던 시절 정 회장도 그 일부였는데, FIFA에서 나오자 개혁을 하겠다고 나서니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현대라는 기업의 태도도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주 FIFA의 주요 스폰서인 VISA, 코카콜라, 맥도널드 등은 블래터 회장이 이제는 내려와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너무 약한 표현이었고 뒤늦은 말이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야 낫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윤리위원회 조사 계획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윤리위원회 조사 계획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반면 현대자동차는 조용히 있었을 뿐이다. 정몽준과 현대의 관계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지 않은가? 지난 수년 동안 현대는 FIFA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고 FIFA의 스폰서임을 행복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였다. 현대자동차 정도 되는 기업이 어떠한 조처를 취했다면 큰 변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 기회도 꽤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의 인물이 나타나 축구계를 이끌어야 할 시기다. 세계 축구는 이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자. 정몽준 회장의 시간은 끝났다. 그 역시 구세력 (old guard)의 한 멤버였기에 새로운 에너지의 개혁파로 등장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금 내려진 징계에 억울한 측면이 있어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싸우는 것은 나도 지지하고 싶다. 하지만 FIFA를 개혁하겠다는 꿈에는 이러한 의견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It is too late’

축구 칼럼니스트/ 번역 조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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