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의 본령은 갈등의 조정이고,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고전적 정의도 있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종국적으로는 권력을 둘러 싼 게임이다. 여권의 권력지형은 묘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집권세력의 핵심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이중적 관계다. 새누리당에는 친박 대 비박이라는 대립적 계파가 존재한다. 청와대 및 친박 대 김무성 및 비박이라는 또 하나의 대립구도가 있다.
그래서 당청 갈등이란 표현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다. 청와대를 구심점으로 하는 친박계와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비박계의 공천룰 싸움은 양측에게 사활적이다. 총선 이후의 차기 대권구도와도 맞물려 있다.
경험칙으로 볼 때 차기 대권은 항상 현재의 권력과 치열하게 싸워 이긴 쪽이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14대 대선 때 노태우 대통령이 이끄는 민정계는 당시 민자당 대표로서 당무 거부까지 불사한 당내 소수파였던 민주계의 김영삼 후보에게 투항한다. 15대 대선 때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와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의 관계는 여야 후보의 대립보다 훨씬 치열하고 극한적이었다. 결국 이회창 후보는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계가 밀었던 후보들을 제치고 여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다.
16대 대선 국면에서는 민주당에서 가장 소수 세력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당내 흔들기를 제압하고 최종 후보 티켓을 거머쥔다. 민주당 내의 주류와의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동반자이면서도 야당보다 강한 야당이었다. 결국 세종시 수정안은 권력정치적 관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살아있는 권력’을 제압함과 동시에 대권으로 다가 간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권력은 마상(馬上)에서 잡는 것이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회전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으면 권력투쟁에서 패한다. 청와대를 구심으로 하는 친박계와 김무성 대표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김 대표가 비박계를 막강 화력으로 여하히 조직화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지난해 상하이에서의 개헌 발언과 관련한 사과, 유승민 정국에서 보여주었던 애매모호함에 이어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공천룰 전투에서의 후퇴는 과거 대권주자들의 결기와 강단과 대비된다.
현재로선 김 대표에게서 권력을 마상에서 잡을 정도의 권력의지와 단기필마로 고지를 향해 내달릴 수 있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비박계 의원들이 내년 총선에서 목숨을 기탁할 수 있는 보스로서의 면모도 찾아볼 수 없다. 칼날을 벼리다가 다시 칼집에 넣는 행태가 반복되면 존재감과 리더십은 그만큼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아직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과 보수층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견고한 상황에서 청와대와의 대립 구도에 대한 부담도 작용했을 법도 하다.
15대 대선 때 당시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이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관련 사안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수사유보 지시를 내렸다. 이는 당시의 ‘살아있는 권력’과 각을 세웠던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는 상황을 ‘조작적’으로 방해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현재 권력’이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 대권의 길목을 차단하는 데는 여전히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정치의 본질을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 선거 경쟁이 정치에서는 알파요, 오메가지만 정치적 쟁점과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명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선거 공학은 한낱 구태로 전락하기 일쑤다. 미래를 꿈꾸는 정치인은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역사교과서 문제에서도 더 진중하게 집권당 대표로서의 무게를 보이는 편이 신선한 보수와 중도의 개혁적 이미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해도 된다고 했던 김 대표의 인식은 그래서 통일민주당 출신의 굵은 선의 개혁적 보수로 비쳤다. 보수층 결집을 너무 의식할 일이 아니다. 청와대에 대한 과도한 의지(依支)는 김 대표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정치는 싸워 이겨야 살아남는 권력 현상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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