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봐 왔던 일이지만,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각 경제부처 고위 관료들은 앞다투어 전통시장을 다녀왔다. 추석 전후 부처 네 곳(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이 낸 보도자료를 봤더니, 9월말~10월초 해당 부처 장ㆍ차관이 전통시장을 방문했다는 발표가 열 건이 넘었다.
정치인이나 고위관료들이 티를 내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이유는 뻔하다.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서민일 가능성이 높기에, 서민과 소통하는 리더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전통시장만한 데가 없다. ‘현장방문’이라는 말이 딱 떨어지는 곳이 바로 전통시장이다. 국밥 한 술 시원하게 떠먹거나 어묵 한 꼬치 먹성 좋게 뜯어 먹는 모습은 부처 홍보를 위해서도 ‘좋은 그림’이 된다. 혹여 더 높은 자리를 염두에 둔 이들에게는 인사권자나 유권자에게 서민적 풍모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게 전부다. 매년 명절마다 관료들이 전통시장을 찾아 친서민 퍼포먼스를 쏟아내고 있지만, 유통환경에서 전통시장이 소외받는 현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있었을 지 모를 그들의 충정을 매도하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장ㆍ차관이 전통시장을 다녀 온 이후 해당 부처에서 관련 정책이 나온 예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을 보면 이런 의심이 별로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수치를 봐도 그렇다. 중소기업청이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통시장 연간 매출액은 2010년 21조 4,000억원이었으나 2012년 20조 1,000억원으로 줄었고, 2013년에는 19조 9,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대로 이 기간 전통시장 점포수는 18만여개에서 20만여개로 늘어나 점포당 매출은 1억원 아래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 더해 정부가 최근 내수진작을 위한 회심의 카드로 내놓은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에서마저도 전통시장은 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전국 166개 전통시장 관계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에 참여하는 전통시장은 불과 20곳(12%)에 불과했다고 한다. “행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답한 곳이 94곳(56.6%)에 달할 정도로 정보에서도 전통시장은 철저히 소외됐다. 조사 대상 65.8%가 “몰라서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고 50.6%가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가 정례화하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걸 봐도, ‘몰라서 못 들어간 것’이지 ‘싫어서 안 들어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형 유통업체는 8월부터 준비에 참여시키면서, 전통시장 참여는 9월 중순에서야 결정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대형 유통업체 사람들을 불러 블랙 프라이데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종용하면서까지 블랙 프라이데이를 띄웠지만, 정작 전통시장에는 그런 게 열린다는 것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전통시장은 블랙 프라이데이에 들러리만 섰다”(오영식 의원)는 쓴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전통시장 살리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정부의 한두 가지 정책 지원만 가지고 대형마트나 백화점으로 이미 쏠려 버린 소비자들의 구미를 돌려놓기 어렵다는 점도 안다. 하지만 세제나 산업정책에 이어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의 경우처럼 유통정책마저 힘센 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간다면, 정부가 말하는 내수 진작은 서민 경제 살리기와 따로 놀게 될 공산이 크다.
다음부터는 전통시장에 갔다 와서 대형마트나 백화점만 수혜 입을 정책을 내놓는 관료들의 ‘자기 기만’을 더 이상은 보지 않았으면 한다. 보도자료의 ‘근사한 그림’의 배경이 되어 준 시장 상인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전통시장을 다녀 왔다면 그 현장 방문에 걸맞은 고민이 담긴 정책을 함께 내 주었으면 좋겠다.
경제부 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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