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100만원 안팎의 고가 초등학생 책가방이 유커(游客)들의 집중 구매 품목으로 떠 올랐다.
급기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2일자에 최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중국인들에게 초등학생 책가방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를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지난 1~7일 중국의 국경절 연휴 중 일본을 찾은 왕(王)모씨도 가장 먼저 3,000위안(약 55만원)짜리 초등학생 책가방을 샀다. 왕씨는 “비싼 건 10만엔(약 95만원)은 줘야 한다”며 “그러나 내구성이 뛰어나서 초등학교 6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데다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어 값어치가 있다”고 밝혔다. 이 책가방은 물에 빠졌을 때 구명조끼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자동차 사고 시 완충 기능도 있다. 지진이 났을 땐 머리를 보호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특히 위치추적장치가 장착돼 있어 아이를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인민일보는 “아무리 책가방의 기능이 많다 하더라도 중국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며 “남쪽의 귤도 북쪽에선 탱자가 되는 법”이라고 꼬집었다. 이 매체는 이어 “중국 제조업자들도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는 상품 경쟁력을 높여 중국 소비자를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당 기관지까지 나서 일부 유커들의 일본 제품 싹쓸이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최근 유커들의 해외 싹쓸이 쇼핑이 과열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의 가치가 지속 하락하며 올 들어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급증하고 있다. 상반기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작년 상반기의 2배인 218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일본 백화점과 쇼핑몰 등에서 비데 변기 뚜껑과 스타킹, 도자기칼, 화장품, 의약품 등을 싹쓸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매장에선 1인당 구매 수량 등을 제한하는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 중국일보는 11일 일본여행업협회를 인용, 1~7일 국경절 연휴 기간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이 모두 40만명이며, 이들이 총 1,000억엔을 소비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중일 간 영유권 분쟁과 역사 인식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 양국 정부관계가 냉담한 상황에서 일본을 찾는 중국인이 급증하고 이들이 묻지마 싹쓸이 쇼핑에 열광하는 건 당국으로서도 당혹스런 장면이다. 한 네티즌은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에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연 지 한 달 여 밖에 안 지났다”며 “누가 난징(南京)대학살을 일으켰는지 잊어선 안 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은 최근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의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기록유산 등재로도 충돌한 바 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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