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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팀 이끈 필 미켈슨 노장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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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팀 이끈 필 미켈슨 노장의 품격

입력
2015.10.1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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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츠컵 선수·관중 모두 찬사

은퇴를 선언했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52)이 미국프로농구(NBA) 2차 복귀를 선언한 후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를 처음 방문한 2002년 1월 19일, 워싱턴 위저즈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를 향해 만원 관중은 약 6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영원한 양키맨’ 데릭 지터(41)의 은퇴식도 동료들과 관중의 기립박수 속에 성대하게 거행됐다.

리스펙트(Respect)는 라틴어 ‘레스피세레’(respicere)에서 온 말이다. ‘반복’을 뜻하는 ‘Re’와 ‘보다’를 의미하는 ‘Spect’의 조합이다. 어떤 대상을 ‘다시 본다’는 의미다. 미국은 어느 사회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높다. 실제 미국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말이 ‘리스펙트 아더스’(Respect Others)다. 정당한 방법으로 훌륭한 업적을 달성한 이에 대해서는 시기와 질투보다 ‘찬사’를 보내는 게 미국 문화다.

11일 막을 내린 2015 프레지던츠컵에서도 그들의 ‘리스펙트’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미국팀 선수들은 하나 같이 필 미켈슨(45)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17년차인 잭 존슨(40)은 8일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미켈슨에 대해 “투어에서 본 최고의 리더”라고 극찬했다. 그는 “한 조를 이뤄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며 미켈슨과 함께 필드에 나선 것에 대해 영광스러워 했다. 대회 기간 중 리키 파울러(27)도 “선수들에게 큰 형 같은 존재다. 모두에게 힘을 낼 수 있게 해준다”며 미켈슨을 향해 존경심을 나타냈다.

미켈슨은 필드 위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보였다. 조던 스피스(22), 파울러 등 젊은 선수들과 달리 강렬한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샷을 날리는 그의 모습은 압권이었다. 1992년 PGA 투어에 입문한 미켈슨은 메이저대회에서 통산 5차례 우승했고 총 42승을 거뒀다. 4대 메이저대회 중 3개 대회(마스터스ㆍPGA 챔피언십ㆍ디오픈) 우승을 거둔 16명의 골퍼 중 한 명이다. 2000년대 이후 다섯 차례나 세계랭킹 2위로 시즌을 마치기도 한 그는 2012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 받지만, 엄밀히 말해 전성기는 이미 지났다. 프레지던츠컵 미국팀에 합류한 것도 제이 하스 미국팀 단장의 추천 덕분이다. 하지만 미켈슨은 ‘잘 나가는’ 스피스와 ‘패셔니스타’ 파울러 못지않게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다. 스피스와 파울러를 지켜보던 갤러리들 가운데는 여성들과 젊은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미켈슨을 따라다니던 갤러리들은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을 찾은 팬들 가운데 가장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1994년 프레지던츠컵 창설 이후 미국팀에 단골로 합류했던 미켈슨은 연륜만큼이나 여유가 넘쳤다. 캐디와 농담을 주고받는가 하면 일부 갤러리들을 향해 웃음 섞인 윙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대회에서 미국이 기록한 15.5점 가운데 승점 3.5점(4전3승1무)을 책임졌다. 그를 따르는 노장 갤러리들은 미켈슨의 품격만큼이나 차분했다. 스피스와 파울러 등 선수들의 경기를 따라 다니다 보면 ‘찰칵’하는 사진 촬영음이 자주 들렸지만, 미켈슨 주위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했다.

현장에서 만난 중년의 한 갤러리는 “미켈슨이 ‘필드 위의 신사’라는 별명처럼 품격 있는 경기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프레지던츠컵에서 미켈슨의 존재는 스포츠에 패기와 승부욕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베테랑으로서 그가 보여준 리더십과 품격, 그리고 미국팀이 보여준 ‘리스펙트’는 스포츠는 물론이고, 크게 볼 때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박종민기자 mi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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