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지혜의 숲은 24시간 개방되는 도서관이다. 얼마 전 그곳의 개관 1주년을 맞아 독자초청 행사가 열렸다. 나도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주최 측의 요청은 단순했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책의 한 부분을 낭독하고 그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난감했다. 가장 좋아하는 딱 한 권을 고르라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의 불가능함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란 영원하고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 나라는 존재가 시시각각 변하듯이, 내가 좋아하는 책도 살아가는 동안 계속 변할 수밖에 없다.
책장을 샅샅이 훑었다. 그때 나란히 꽂힌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겉표지는 다르지만 제목은 같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소설의 주인공인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쌍둥이 형제다. 마치 하나의 몸, 하나의 영혼 같은 관계인데 제1부 ‘비밀노트’ 안에서는 소년들이 전쟁 중 외할머니 집에 맡겨져 겪는 여러 일들이 펼쳐진다. 전쟁으로 인성과 관습이 무너지고 인간의 욕망이 날것으로 드러나는 시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년들은 변해간다. 그 모습은 인간문명에 대한 하나의 우화로 읽히기도 하고 끔찍하고 지독한 성장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나는 이 소설을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1994년 무렵이고 또 한 번은 2015년 올해 초다. 처음에는 1993년 7월 5일 출간된 판본으로 읽었고, 20년 뒤의 독서는 2014년 12월 30일 재출간된 새 책으로 이루어졌다. 겉표지가 달라졌고 세 권으로 나뉘었던 책들이 합본으로 출간되었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점이 없다. 출판사도, 번역자도 같다. 그러니까 똑같은 책을 20년 만에 다시 읽은 셈이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은 진짜 같은 책일까?
1994년의 나는 대학생이었다. 다른 20대 초반의 젊은이처럼 나 역시 불쑥불쑥 삶이 막막하고 아득하다는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나라는 존재가 끝없이 펼쳐진 넓은 세상에 톡 던져진 도토리 한 알처럼 느껴지는 날이면 도서관으로 숨어들었다. 숨을 곳이 거기밖에 없었다. 빽빽하고 울창한 책들의 숲 속에서 비로소 조그맣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 책도 그때 만났었던 것이다.
소설의 앞부분을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생생하다. 가혹해진 현실의 조건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호되게 단련하는 방식을 택하는 소년들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무덤덤하게 기술하는 문장이 당시의 내게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감당하기 힘들어 얼른 책을 덮고만 싶었다. 간신히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무척 힘든 독서 체험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그 속에서 어떤 날카로운 칼날 같은 것이 곁을 스쳐 지나갔고 그것은 물음표 모양의 희미한 상처 자국이 되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20년 만에 다시 같은 책을 펼쳤을 때, 모든 것이 달랐다. 문장들도 그대로이고 고통을 마주하는 인물들의 태도도 그대로인데 마치 그 한 줄 한 줄을 처음 읽는 것만 같았다. 여전히 숨이 막히도록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 고통의 언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제는 소년들의 입과 몸과 영혼을 빌려 담담한 듯 읊조리는 문장들 너머, 소년들을 둘러싼 폭력과 암흑 너머가 읽혔다. 무엇보다 행간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인간의 모습이 더욱 아프게 와 닿았다.
책을 덮고 나서 나를 지나간 그 20년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얼마나 사무치게 같은 사람인가?
자꾸만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독자의 곁에 있는 모든 좋은 책들의 소임이다. 그 날 독자의 밤 행사는 무사히 끝났다. 시간 관계상 청중들 앞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소상히 하지는 못했지만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책과 독자를 비밀스럽게 잇는 숲이 되기를 바란다는 진심만은 잘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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