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 가는 한국의 성장동력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정부 만능주의가 사라져야 한다. 개발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정부에 과도한 기대를 품게 되었다. 오죽하면 개그콘서트에 온갖 일마다 “정부는! ~할 수 있게 ~하라!”고 부르짖는 유행어까지 나왔겠는가? 언론도 “정부가 나서라”고 부추기며 청와대도 정부를 압박한다. 정부는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국민과 정부 모두 정부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올 초 대학의 MT에서 학생들의 음주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교육부는 발 빠르게 ‘학교행사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한다. 안전관리 우수대학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고 한다. 학생의 음주문제는 개인의 문제이며 학교가 자율적으로 지도할 사안인데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 한 신문 사설도 “대학이나 당국 차원에서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부추긴다. 정부는 MT를 통제하며 대학 통제도 강화하는 부수입을 얻는다.
산업통산자원부 주도로 소위 블랙 프라이데이 전국 합동세일이 진행 중이다. 할인 폭이 적다는 지적에 정부는 유통사에 추가 할인 압력을 넣었고 이는 먼저 구매한 소비자의 원성을 샀다. 소비 진작은 분배 개선 등 근본을 해결해야지 이런 식의 이벤트로는 달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이벤트를 그만 둘 것 같진 않다. 한 언론은 “정부나… 기업은… 다음에는 알차고 내실 있게 준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정부 역시 기업 통제를 즐겼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고용창출 우수기업 지원제도’는 고용창출이 ‘우수’한 기업을 선정해 정기 근로감독 면제, 법인세 조사 제외 등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제도다.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실 발표에 의하면 선정된 ‘우수’ 기업들의 38%가 최근 고용을 축소했다 한다. 정부가 주는 혜택을 위해 창출한 고용은 오래 못 간다는 교훈이다. 정부는 노동시장 개선,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 등 근본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일하는 티를 내고 기업 통제의 부수입을 얻으니 이런 이벤트성 정책은 계속될 것 같다.
대통령의 중동 순방시 ‘할랄식품산업 협력 MOU’가 체결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신속하게 8대 추진과제를 발표한다. 거기엔 무슬림 관광객 대상 할랄식품 공급 방안도 포함된다. 할랄식당이 적어 우선 할랄도시락 공급을 고려하며 할랄식당 리모델링을 지원한단다. 식당은 수요가 있으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인데 여행사의 고민을 정부가 대신해 주고 있다. 농림부는 나아가 할랄 관련 과(課) 신설을 시도한다. 그러자 한 신문은 “주무 부처에는 아예 할랄 관련 과 단위 조직이 없다”며 거든다. 농림부는 청와대에 열심히 일하는 티를 내며 시장통제를 강화하고 조직 확대를 추진한다.
국민이 어려움을 호소할 곳이 정부 외엔 없으니 정부에 기대는 건 이해가 된다. 이러한 정부 만능주의는 정부에게 부담인 동시에 즐거운 일이다. 영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온갖 일을 다 하게 되면 결국 개인의 의존심도 커져 경제 활력은 떨어진다. 과거 새마을운동의 정신이었던 자조, 자립은 정부에 대한 의존 탈피를 의미했다. 국민은 정부가 뭐든 다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정부는 그에 편승하여 힘과 자리를 늘리는 국가에선 활력을 기대할 수 없다.
국민과 청와대의 요구가 높을수록 정부는 효과 없는 이벤트와 대증요법으로 일하는 티를 내는데 집중한다. 그리곤 할 일 다 했다 홍보하며 면피한다.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문제는 뒷전이 된다. 국민은 당분간은 속을지 모르지만 결국 정부에 실망하게 된다. 이는 대정부 신뢰를 저하시킨다. 결국 정부 만능주의는 정부에게도 독이다. 정부는 할 수 없는 일을 국민에게 분명히 설명하는 ‘기대수준 관리’를 해야 한다. 국민이나 청와대도 정부에 당장의 성과 요구는 자제하자. 그래야 정부가 홍보용 정책을 그만 두고 4대 개혁 등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정부는 만능이 아니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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