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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배출가스 정화장치 결함 감추려 했나

입력
2015.10.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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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화질소 모으는 장치 LNT

5만㎞ 달려도 효율 40% 감소

정상작동시 정기검사 탈락 우려

"실제 주행 때 정화장치 끄도록 조작

단순한 연비 향상 위한 것 아냐"

최근 전세계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 중 하나는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태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조작 사실을 발표한 이후 폭스바겐 관련 뉴스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세계 1위 자동차 업체가, 그것도 ‘국민(Volks) 차(Wagen)’라는 이름의 업체가 세계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정작 기술적으로 무엇을 조작했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저 ‘인증시험 때와 달리 실제 도로주행 시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끄도록 제어 프로그램을 조작했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게다가 EGR(배출가스 재순환장치), LNT(질소산화물 저감장치) 등 생소한 용어들이 난무하면서 폭스바겐 사태는 ‘그저 복잡한 기술적인 문제’로 전락했다. 이에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기술적인 문제를 쉽게 풀어봤다.

디젤 배기시스템의 구조

가솔린엔진이나 디젤엔진 등 연료를 태워 동력을 얻는 엔진은 필연적으로 가스를 배출한다. 이 가스를 원활하게 배출하면서 오염물질을 제거해주는 게 배기시스템이다. 특히 디젤엔진은 같은 크기의 가솔린엔진과 비교했을 때 열 효율이 좋아 동일한 양의 연료를 태워도 더 큰 출력을 낼 수 있지만 산화질소(NO, NO2, N2O 등 NOx)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어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NOx는 호흡기질환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는 NOx와 미세먼지 등을 포함한 디젤 매연을 석면, 타르, 카드뮴과 같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xhaust Gas RecirculationㆍEGR)와 질소산화물 저감장치(Lean NOx TrapㆍLNT)다. 최근 생산되는 디젤엔진은 출력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고온고압에서 작동하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공기 중에 있는 질소와 산소가 결합해 NOx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EGR은 엔진에서 나온 배출가스를 다시 엔진으로 보내 엔진에 공급되는 산소의 양을 감소시켜 NOx의 양을 줄인다. 이렇게 EGR을 작동시키면 엔진 출력이 저하되는 단점이 있다.

EGR이 엔진에 붙은 장치라면 LNT는 배기구 쪽에 붙은 장치다. NOx와 잘 결합하는 백금, 팔라듐 등 촉매를 사용해 NOx를 모아두었다가 연료로 태워 질소와 산소로 환원시킨다. 전문가들은 통상 LNT 작동을 위해 추가로 소모되는 연료량을 2~4% 정도로 보고 있다.

김정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소장이 6일 오전 인천 서구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서 폭스바겐 경유 자동차 실제 도로 배출가스 측정에 사용될 장비와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김정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소장이 6일 오전 인천 서구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서 폭스바겐 경유 자동차 실제 도로 배출가스 측정에 사용될 장비와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폭스바겐 이슈의 핵심은 EGR과 LNT

폭스바겐은 2009~2015년식 소형 디젤차량에 장착된 EA189 엔진의 제어프로그램에 대해 인증시험을 받을 때만 EGR과 LNT를 작동시키고 실제 도로주행 시에는 끄도록 조작했다. 스티어링휠을 움직이지 않고 엔진 제어장치를 측정하는 시스템이 연결된 채 주행하면 프로그램이 이를 인증시험을 받는 조건으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실제 주행 시 연비와 출력이 좋아져 차량 제원표에 나와 있는 공인측정치를 뛰어넘기도 한다. ‘폭스바겐 차는 잘 달리면서도 연료를 적게 먹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이런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인증시험 때만 LNT를 작동시켜 공인연비를 낮췄을까’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LNT의 내구성 문제를 감추기 위한 속임수였을 것이라고 추리한다.

“조작은 LNT 결함 때문인가”

자동차 수리업체 카닥의 이준노 대표가 제공한 자료를 보면 폭스바겐 LNT의 NOx 포집 효율은 5만㎞만 주행해도 신차 대비 60%선까지 하락한다. 또 LNT의 온도가 24시간 동안 800도 이상으로 가열되면 효율은 5만㎞ 주행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LNT가 정상적으로 작동해 NOx를 주기적으로 태울 경우 LNT 내부 온도는 수시로 800도에 도달한다.

때문에 LNT가 정상 작동하면 그만큼 효율이 단시간 내에 떨어지게 돼 출고 후 정기검사에서 폭스바겐 차량들은 배출가스 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이는 폭스바겐에 치명타가 된다.

이준노 대표는 “적정 마일리지 주행 후에도 내구수명에 도달하지 않도록 LNT 연소기능 작동을 멈추게 했다가 시험 때만 작동하게 해 LNT 결함문제를 피하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6일 마티아스 뮐러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가 내년 1월 리콜 계획을 밝히면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수리가 가능하지만 일부 차량은 개조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LNT의 구조적 결함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GR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지만 LNT는 내구성이 개선된 새 부품으로 교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에 수입된 모델에는 LNT가 장착돼 있지 않다. 전문가뿐 아니라 폭스바겐 관계자도 “문제 차량에 적용된 한국의 경유차 배출가스 기준(유로5)은 미국 기준(40㎎/㎞)보다 약 두 배 많은 NOx를 허용하기 때문에 LNT 장착 없이 EGR 만으로도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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