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과 달리 핵·미사일 언급 안해
민심 등에 업고 당·군부 견제 의도
김일성의 대중적 풍모 따라하기
국제사회 고립 탈피 노림수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10일 노동당 창건일 70주년을 맞아 ‘인민제일주의’를 강조했다. 앞서 핵과 미사일을 강조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심지어 그는 이날 대중연설에서 “존경하는 평양시민 여러분”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변화된 모습을 확연히 드러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 정치’와 결별하고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대중적 풍모’를 따라 한다는 평가부터 취약해진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의도적 노림수라는 해석까지 다양한 분석이 뒤따랐다.
김정은은 이날 평양에서 진행된 열병식 도중, 김일성광장을 가득 메운 12만 군중을 상대로 25분간 대중연설에 나섰다. 조선중앙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연설에서 그는 인민이란 단어를 무려 90차례나 사용했다. 2012년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처음 나섰던 대중연설에서 민생과 관련해 인민생활(4회), 경제(3회) 등을 언급하는 데 그친 반면 대부분을 선군 정치 계승에 할애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김정은은 특히 “인민들에게 깊이 허리 숙여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삼가 드린다”거나 “인민들에게 멸사복무하자”라고 외치는 등 인민의 민심을 다독이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김정은의 애민 행보 강화 배경에는 선대와 달리 취약한 권력 기반을 민심으로 만회해 장기적 체제 안정을 구축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11일 “아버지 김정일은 권력 기반이 공고해 군부만 장악하면 문제 없었지만, 김정은은 인민을 바탕에 깔면서 당과 군부를 그 위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간접 통치 전략을 구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외적 압박과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정상 국가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계산도 엿보였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집권 당시 천명했던 핵ㆍ경제 병진 노선의 현실적 한계를 깨닫고, 군사력 강화가 아닌 인민 경제 향상으로 정책 방향 수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강경일변도의 핵과 미사일에만 매달리는 것을 벗어나 정책 의제의 유동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말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특히 김정은이 ‘김일성 따라하기’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2012년과 달리 준비해온 원고만 쳐다 보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는 등 한결 여유 있는 연설 태도로 대중과의 스킨십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주민들과 대면 접촉을 극도로 꺼린 은둔형 지도자인 김정일과 달리 직접 인민들과 소통하려 했던 김일성의 이미지를 연출해 충성심과 향수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김정은은 이번에도 김일성 특유의 낮고 무거운 음색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심화하는 경제난 속에 당 창건 행사 준비에 동원된 인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이날 김정은이 단상을 짚은 채 연설하는 장면을 두고는 허리나 다리의 관절 또는 신경 이상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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