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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종소리

입력
2015.10.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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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근처에 있는 큰 대학교 캠퍼스를 가로질러 산책할 때가 있다. 나무들이 우람하고 빽빽하게 조성돼 있다. 짐짓 머리가 가벼워진다. 캠퍼스를 빠져나오면 작은 언덕 끝에 절이 있다. 태고종 계열의 오래된 절이다. 수령 400년 정도 된 느티나무와 본당 앞 너른 뜰의 연꽃들도 장관이다. 해거름쯤 오르면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도 들을 수 있다. 한동안은 타종 시각에 맞춰 매일 찾은 적도 있다. 소리가 크되 높거나 새되지 않고, 부드러운 여음은 산 아래 북적대는 자동차 소리들을 현세의 이명으로 지워버릴 만큼 웅혼하기도 하다. 가만 듣고 있으면 허공 중에 떠 있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흡사 요가라도 열중한 듯 몸 안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투명한 자각증세도 생긴다. 이편의 호흡도 단전 아래까지 깊숙이 내려가 평소와는 다른 어조로 말이 터질 것도 같다. 가수 김현식은 죽기 얼마 전, 종소리에 탐닉했었다고 한다. 종소리처럼 깊고 둥글고 품이 큰 소리로 노래하고 싶었다고 했단다. 본래의 미성을 버리고 그토록 처절하고 복받치는 탁음으로 발악하듯 소리 질렀던 것도 그래서였을 거다. 목울대 한 끝에 걸려있는 최후의 작위와 욕망을 끊어버리고 스스로 종이 되고자 했던 것. 절을 내려오며 목소리를 내 본다. 아직도 내 속엔 꽉 막힌 구멍이 많다. 바람이 뒷덜미를 쓸고 간다. 여직 남아있는 종소리의 저릿한 파문 같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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