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기 수출이라는 게 있다. 수출기업들이 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월말이나 연말에 수출 물량을 미리 내보내는 것을 말한다. 과거엔 정부가 나라 전체 수출이나 무역수지를 관리하기 위해서 기업들을 다그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12월만 되면 수출액수가 다른 달보다 확 늘어나고 적자 폭이 크게 줄어들었던 건 그래서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수출입 성적표는 대외신인도와 직결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벗어나기 쉽지 않은 유혹이었을 거다. 정상적이라면 다음 달, 혹은 이듬해 실적으로 잡혀야 될 수출이 앞당겨 실적에 반영되는 것이니 월초나 연초 수출은 급격히 줄어든다. 조삼모사다.
학창시절 벼락치기 시험 공부에 대한 경험은 누구나 있지 싶다. 공부를 게을리하다가도 시험 전날 밤을 새가며 몰아치기를 하면, 만족할만한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그 효과는 상당했다. 암기 위주의 우리나라 학교 시험의 문제이기도 했고, 오랜 기간 축적된 벼락치기의 노하우 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습득한 지식은 머리에 입력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머리 속을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성적표의 점수가 자신의 진짜 실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 혹은 목표치는 3.1%다. 다른 기관들의 전망치가 심지어 2%대 초중반까지 줄줄이 하향 조정되면서 이제 3%대 성장률을 말하고 있는 곳은 정부가 거의 유일하다.
정부는 다소 무모한듯한 이 성장률 달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목표치인 3.1%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앞자리에 ‘3’이라는 숫자는 봐야겠다고 집요하게 매달린다. ‘초이노믹스’란 이름 아래 진행한 돈 풀기 등 각종 경제활성화 정책에도 2%대 성장에 머무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적지않은 듯하다. 물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며칠 전 국정감사에서 “하방 리스크는 좀 있지 않나 싶다”며 살짝 출구를 열어놓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어떻게든 0.1%포인트라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집념은 여전하다.
실력보다 더 높은 성적표를 받아 들기 위해서는 뭐가 됐든 특단의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다. 밀어내기거나 벼락치기거나, 혹은 그 둘 다다.
우선 밀어내기. 내수 회복을 위한 회심의 카드로 꺼내든 자동차와 대형 가전의 개별소비세 인하는 올해까지다. 가판대 상인들이나 쇼핑호스트들이 외쳐대듯 “날이면 날마다 오는 이벤트가 아니다”는 얘기다. 이렇게 국민들을 부추기니 실제 판매 증가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런 내구재 들은 통상 교체 기간이 10년이 넘는다. 내년은 물론 그 이후까지도 소비가 급감할 거라는 ‘소비절벽’이 결코 기우가 아닐 듯싶다.
그리고 벼락치기. 임시공휴일을 지정해 주고 통행료까지 면제해 줄 테니 놀러 가서 돈 좀 쓰라고 독려하고, 관제 논란을 빚으면서까지 기업들을 닦달해 할인 행사를 급조한다. 정부는 당장 소비가 늘었다고 잔뜩 고무돼 주마가편 식으로 기업들에게 할인폭 확대를 주문한다. 올 연말에도 대규모 할인행사를 기획할 거란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1년 365일 할인행사를 하고 공휴일을 더 늘려준다 한들, 소득이 늘지 않고서는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는 본격적인 내수 회복이라며 잔뜩 고무돼 있지만, 지금의 소비 증가가 벼락치기의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이라는 진단에 더 공감하는 이유다. 주요 경제기관들이 줄줄이 올해뿐 아니라 내년 성장률까지도 2%대로 낮춰 잡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니 정부가 그토록 목 매고 있는 3% 성장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여 이런 노력으로 3% 성장률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한다고 해서 나라 경제가, 또 국민들의 삶이 뭐가 달라지는 것이냐는 말이다. 정부의 노력을 모두 다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결국 ‘초이노믹스’의 성적표에 ‘3’이라는 숫자가 찍히는 게 전부 아니냐”며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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