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에 자살에 대한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내용이 있어도 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보험사가 약관을 잘못 작성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제9민사부(재판장 오성우)는 지난 7일 박모씨 등이 교보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지급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 중 피고 패소부분을 취소한다"고 선고했다. 박모씨 등은 교보생명에 재해 특약에서 정한 보험금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장했었다.
원고인 박씨 등은 2004년 아들의 이름으로 보험을 들면서 사망시 일반 보험금 외에 재해분류표에서 정한 재해로 사망하면 5,000만원을 별도로 주는 특약에 가입했다. 그러나 박씨는 2012년 아들이 자살을 했음에도 교보생명이 일반보험금만 주고 재해사망보상금은 지급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재해사망 특약의 약관에 있었다. 대부분의 생명보험사들은 2010년 4월 이전 판매한 상품의 약관에 문제의 내용을 담고 있다. 피보험자가 스스로를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면서도 '정신질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나 특약 보장개시일로부터 2년이 지난 뒤 자살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라고 단서를 단 것이다.
생명보헙사들은 재해보상특약의 약관에 대해 실수로 포함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자살을 재해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재해보상금 지급을 거부한 것이다.
이에 대해 가입자와 소비자단체들은 약관이 잘못됐더라도 작성자인 보험사가 잘못한 것이므로 약관대로 보험금을 줘야 한다고 맞섰다.
실제로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비슷한 사례의 가입자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특약에 따른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특약 가입자들이 이 약관을 보고 자살시 재해사망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거나 동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특약을 무효로 돌리는 것은 고객에게 불리해 수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 판례가 이번에 뒤집힌 것이다.
이번 소송에서 재판부는 부험사가 약관 제정 과정에서 옛 표준약관을 부주의하게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평균적인 고객의 이해가능성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주계약과 재해 특약이 규정한 보험사고 등에 대한 차이는 명확히 이해될 수 있다"며 "자살이 재해 특약에 의해 보험사고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특약 체결시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해석했다.
또 재판부는 "평균적인 고객의 입장에서 특약의 본래 취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음에도 특약의 보험사고 범위를 자살까지 확장하려는 것은 보험계약자에게 기대하지 않은 이익을 주고 보험자에게 예상치 못한 무리한 부담을 지우므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면책제한조항은 특약의 취지와 쌍방 진정한 의사, 약관의 제정 경위 등에 비추어 잘못된 표시에 불과하다고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은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김재웅 기자 jukoas@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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