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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사람으로 세상읽기] 사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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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사람으로 세상읽기] 사도세자

입력
2015.10.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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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영화 ‘사도’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극으로, 소설로 만들어졌지만 인기가 여전하다. 이 사건은 부왕이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굶겨 죽인 황당하고 참담한 일이었다. 사건의 배경은 단순한듯하면서도 매우 복잡 미묘해, 누구나 공감하는 하나의 해석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따지고 보면, ‘뒤주 사건’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제각각의 진실을 전한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진실들의 화해는 쉽지 않다.

영조 “종묘사직 위한 불가피한 선택”

1762년 한 여름, 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고 말았다. 그때 세자는 자신의 처지를 밝힐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진실은 영원한 비밀로 남았다.

이 사건은 직접관련자들만 해도 수가 많았고 그 구성도 복잡했다. 우선 사건의 장본인인 아버지 영조와 생모 영빈 이씨가 있었고, 계모 정순왕후와 숙의 문씨 등 아버지의 여인들이 또 있었다. 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와 장인 홍봉한, 그리고 ‘세손’(훗날의 정조)을 포함한 5명의 아들들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이 사건의 전개 과정에는 각 당파의 대신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뒤주 사건’은 기회거나 위기 또는 둘 다였다.

아버지 영조의 생각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나타나 있다. 그는 끔찍한 이 사건의 관련 기록을 ‘세초’ 즉, 지워버리라고 명령했으나 다 없애지는 못했다. 현전하는 기록을 보면, 망할 자식을 없앴다는 말로 요약된다. 아버지는 아들의 무능과 빗나간 행위를 증오했다. 결국에는 그 아들이 자기를 죽이고 권력을 탈취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친자 살해는 막장 드라마였으나, 사건의 연출자인 아버지는 종묘사직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처음에는 이 사건이 당파싸움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자신의 말을 뒤집어, 책임을 일부 신하들에게 전가하는 듯했다.

아버지에게도 일종의 명분은 있었다. 대를 건너뛰어 똑똑한 세손에게 왕위를 직접 물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 아버지의 마음은 매사에 흔들렸다. 조정 대신들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도 그 약속을 철석 같이 믿지는 못했을 것이다. 장차 세손이 음모와 위기의 수렁에 빠질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친정에 기대 난국 헤쳐가려 한 혜경궁

생모 영빈이씨. 남편 영조는 그에게 아들의 비행을 고해바친 공이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의 진실이었다. 아들을 여읜 어머니의 슬픔은 형언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강압 때문에 아들의 죄를 고발했고, 그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 앓다가 죽었다고 해야 맞다.

계모 정순왕후에게 뒤주사건은 호재였다. 말썽 많은 세자를 제거했으니, 장차 세손까지도 흔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궁 안에 들어온 지 몇 년 밖에 안 된 그였다. 친자 살해 같이 민감한 문제에 노골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계모와 그 친정 식구들은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며, 늙은 왕이 세상을 뜬 다음 대권을 손에 넣을 궁리에 바빴다.

그때 아버지의 총애를 받은 여인은 숙의 문씨였다. 그는 오래 전부터 세자와 대립하며 암투를 벌였다. 이제 왕자만 잉태한다면 차기대권도 가능해 보였다.

며느리 혜경궁 홍씨는 일대위기에 빠졌다. 그가 보기에도 남편은 시원찮았다. 공부도 인간관계에도 서툴렀다. 시아버지의 질책에 넋이 나간 남편은 정신병에 걸려 많은 인명을 살상했다. 비록 그렇다 해도 남편이 없는 세상에 자신도 아들도 무사하기는 어려웠다.

혜경궁은 시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시아버지는 매정하고 변덕스런 인물이었다. 그러나 세손의 장래를 위해서는 시아버지에게 잘 보여야 했다. 자신보다 한창 젊은 계모에게도 흠이 잡히면 안 되었다. 혜경궁은 친정 사람들에 기대어 어려운 난국을 돌파해야 했다. 그의 절절한 심정은 훗날 ‘한중록’에 기록되었다.

장인 홍봉한에게 사위는 아들이나 진배 없었다. 사위는 자기를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장인도 울타리가 되어 사위를 감쌌다. 그러나 사돈의 단호한 의지를 알고 마음을 접었다. 사돈은 제 자식을 죽이면서 장인인 그에게 ‘뒤주’를 들여보내라고 했다. 비극적 사건의 공범으로 만든 것이다. 홍봉한은 이제 외손자라도 잘 지켜 훗날의 영광을 기약하고 싶었다. 사돈도 그런 생각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러나 아들까지 죽인 변덕스럽고 기괴한 사람을 믿을 수는 없었다.

세손, 과거사와 화해하며 왕권 강화

어린 세손의 운명도 풍전등화였다. 무서운 할아버지에게는 자기 말고도 네 명의 손자가 더 있었다. 또, 만약의 경우 할아버지와 젊은 할머니 사이에서 대군이 태어나거나, 할아버지의 후궁에게서 왕자라도 생긴다면 자신에게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질 것이었다.

훗날 세손의 기억은 탈색된다. 그가 직접 지은 ‘현릉원지’에는 불편한 기억이 축소되고 변조된다. 왕이 된 세손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신까지 3대 부자간의 화해를 도모한다. 그는 왕실 가족 갈등의 원인을 모두 바깥으로 돌렸다. 당쟁과 궁중의 복잡한 권력투쟁이 생사람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세손은 뒤주 사건을 정치 도구로 삼았다.

그러나 사건을 지나치게 확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기득권 세력과 외척의 발호를 제한하는 선에서 과거사 정리를 마쳤다. 세손이 역점을 둔 것은 아버지의 명예회복이었다. 아버지의 능력과 성품을 성군 수준으로 한껏 꾸며댔다. 아버지가 저지른 살인사건 같은 문제는 숫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세손은 아버지의 능묘를 짓고, 행궁과 신도시를 만들고, 군영도 설치했다. 추모사업을 빌미로 세손은 자신의 왕권 강화를 추구했다.

뒤주 사건으로 조정 대신들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해관계는 당파마다 달랐다. 같은 당파 안에서도 셈법은 서로 달랐다. 다수의 고관들로서는 이 사건이 장차 독이 될지 약이 될지를 내다보기 어려운 것이 문제였다. 그들은 지배적인 흐름을 분간하기에 바빴다.

역사적 진실은 증층적이다. 누구의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서 해석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영화 ‘사도’의 해석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권력자의 폐쇄적 권위주의가 문제

뒤주 사건을 떠올리면 요즘 ‘강남 엄마’들이 좋아하는 소형 부스가 연상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감금하다시피 해놓고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꼴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듯하다. 재벌가의 후계 문제가 현대판 뒤주 사건을 닮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굴지의 어느 재벌가에서도 장남이 평생을 산송장처럼 살았다고 한다. 뭔가 복잡한 내부 문제가 있었을 텐데, 그 핵심은 결국 가족 간의 갈등이 아니었을까.

부자 갈등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다. 중산층의 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예전처럼 정답지 않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들 밑에는 맥없이 어깨 처진 자식들이 많다. 경제구조상 청년실업률이 높은 관계로, 나이 서른이 넘어도 취직하기가 어렵다. 아들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사회구조의 문제가 만만치 않다. 세상의 틀을 못 바꾼다면, 내 자식만 나무라서 될 일이 없다. 그래서일까. 궁지로 내몰린 청년들이 ‘헬조선’으로 반격한다. 이런 세태가 좀 황당하기는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좌절하는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뒤주 사건은 노령화 문제와도 접점이 있다. 100세 시대를 말하는 요즘, 아버지들은 쉬 시들지 않는다. 그들은 영조보다 건강하다. 남몰래 상속을 고대하는 자식들은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사도세자처럼 지치고 시들어 간다. 노년의 건강은 물론 축복이다. 하지만 그것이 장기불황과 엉성한 사회복지제도 등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지극히 불행한 개인사가 연출되는 배경이다.

어떤 문제든 해결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영조는 과연 사도세자를 죽여 없애야만 했을까. 그보다 나은 방법도 분명히 있었다고 믿는다. 좀 더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실의 여러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권위주의로는 도무지 문제 해결이 안 된다. 권력자가 달라져야 한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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