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영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이 됐다. 두 기록물은 4~6일(이하 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12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의 등재심사를 통과하고 9일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추인을 받았다. 이로써 한국이 보유한 세계기록유산은 총 13개가 됐다.
‘유교책판’은 경북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유학 관련 책판(冊板ㆍ책을 인쇄하기 위해 글을 새긴 나무판) 718종 6만4,226장이다. 가장 오래된 1460년 경북 청도군 선암서원에서 판각한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보물 917호)부터, 1956년에 판각된 박주종(朴周鍾ㆍ1813~1887) ‘산천선생문집(山泉先生文集)’까지 포함돼 있다. 718종 중 문집이 583종으로 가장 많은데, 사대부 사후에 그의 글을 모은 문집을 가문과 주변 유학자들이 함께 목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양반들은 유교책판 제작을 통해 당대 지배적 사회사상인 유학을 공동체의 핵심 가치로 재확인하고 후대로 전파했다. 국가가 돈을 들여 제작했던 팔만대장경과 달리 각 지역 지식인 집단이 공론을 모은 후 비용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출판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공동체 출판이라 할 수 있다. 박순 한국국학진흥원 목판연구소 연구원은 “책판 소유자들은 책판에 강한 애착을 지녔으며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할 때는 지역 유림들이 모여 고유제(告由祭ㆍ중대한 결정을 내린 후 그 내용을 조상에 알리는 제사)를 지낼 정도로 중시했다”며 “유교책판은 조선 사대부들이 추구하던 정신적 가치의 상징”이라 설명했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138일간 방송된 프로그램이다. 전쟁과 생활고로 헤어져 연락이 끊긴 남한 내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자는 취지의 방송이었다. 당초 1시간 30분 가량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여의도 방송국 앞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138일 동안 릴레이 생방송을 이어갔다. 총 방송시간 453시간 45분으로, 단일 프로그램으로서는 세계 최장기간 연속 생방송 기록이다. 방송을 통해 이산가족 사연 5만3,536건이 소개됐고 1만189명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았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방영기록물은 비디오테이프, 담당 PD의 업무수첩, 이산가족의 신청서, 큐시트, 기념음반 ‘잃어버린 30년’ 등으로 구성됐다. 서경호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영상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전례는 많지만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을 담은 기록물이 단독으로 세계기록유산이 되는 것은 처음”이라고 등재 의미를 설명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 송기윤 KBS 세계유산프로젝트 방송기획단장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이산가족문제에 대한 관심을 새로운 방송으로 되살리려 한다”며 “통일부, 대한적십자사와 협력해 남한과 북한의 방송 이원생중계를 통한 이산가족 만남 방송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기록유산은 역사의 기록물 중 당대 사람들에게 유의미했고 후세에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전세계가 함께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유네스코의 기록유산 보호제도다. 1997년부터 2년마다 열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총 301종의 세계기록유산을 지정했다. 앞서 등재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으로는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고려대장경, 조선왕조의궤, 동의보감, 일성록, 5ㆍ18 민주화운동 기록물, 난중일기,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있다.
한편 이번에 중국의 난징(南京)대학살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데 대해 일본 정부는 “극도로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중일전쟁 중인 1937년 12월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난징 시민과 중국 군인들을 집단 학살한 난징대학살 기록을 기록유산 등재 신청하고 관련 자료에 당시 30만명 이상이 희생됐다는 난징군사법정의 자료를 포함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이 숫자가 과장됐다며 “중국이 유네스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반발, 사무총장의 최종 등재 추인이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 위안부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서 일본 정부가 “중국이 유네스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반발,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최종 추인이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가 함께 등재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자료는 등재되지 않았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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